은행 정기예금 물밀듯… 웃어야 할 은행, 왜 울상?

입력 2010-07-12 09:44:42

시중자금이 은행 정기예금으로 몰리고 있지만 은행들은 오히려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정기예금의 절반 이상이 6개월 미만의 단기 예금인 탓에 자금 운용이 쉽지 않고 주식시장 활황이나 새로운 투자처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게다가 이달 9일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된 데 이어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이 예상되면서 자금 조달 비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몰려드는 정기예금

올들어 대구경북의 예금은행에는 정기예금이 밀려들고 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지역 예금은행에 들어온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4월 말 현재 23조1천528억원으로 올해 초에 비해 1조4천458억원이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정기예금이 1조3천86억원 줄어든 데 비하면 증가폭은 더 크다. 은행 정기예금 증가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외환은행 등 6개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은 지난달 말 현재 356조6천53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9조7천13억원(20.1%) 급증했다. 이는 지난 한해 전체 증가액(31조8천203억원)의 2배에 가깝다. 이자가 거의 없는 요구불예금(180조7천676억원)도 지난해 말보다 4조9천439억원(2.8%) 늘었다.

이처럼 은행으로 자금이 몰리는 이유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우려와 불안정한 국내 증시, 부동산 침체 등으로 투자처를 제대로 찾지 못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예금 금리가 본격적으로 오를 전망이어서 새로운 투자 수단을 찾기 전까지 은행에 맡겨두겠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절반 이상이 6개월 이하 단기예금

문제는 이들 정기예금 대부분이 자금을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는 6개월 이하의 단기 예금이라는 점이다. 대구은행에 따르면 올 1월 전체 정기예금 중 9%에 불과했던 만기 3개월 미만의 정기예금은 6개월 만에 17%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3~6개월 미만의 정기예금도 올 초 23%에서 지난달에는 39%로 13%p나 증가했다. 만기 6개월 미만의 정기예금이 절반 이상인 셈이다.

시중은행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 등 4개 은행의 정기예금 가운데 만기가 6개월이 안 되는 정기예금 비중은 22%나 됐고, 만기 6개월~1년 미만인 정기예금의 비중은 27%였다.

◆금리인상, 기존 예금에는 별 혜택없어

금리가 오르면 예금 금리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리 인상의 덕을 보는 이자부 자산은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 903조1천억원, 기업 397조1천억원 등 1천300조2천억원이었다. 그러나 기존 이자부 자산은 금리 인상 혜택이 거의 없다. 정기예금의 경우 가입자는 만기가 될 때까지 가입 당시 금리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대출금리는 고시 금리 인상 폭만큼 오른다. 3개월마다 바뀌는 CD 연동이나 6개월마다 바뀌는 코픽스 연동 대출도 이번 주 금리 변동 주기가 돌아오면 금리가 오를 예정이다. 금리 인상으로 새로 정해지는 신규 예금금리도 대출금리 인상 폭에 크게 못 미칠 공산이 크다. 은행권은 그동안 시장 금리의 상승세를 반영해 예금금리를 올려놨다는 이유를 들어 예금금리의 추가 인상에 소극적이다.

◆단기 자금 더 몰릴 듯

상황이 이렇다보니 단기 예금을 선호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연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의 추가 인상이 이뤄질 전망이어서 향후 금리 변동에 따른 대기 수요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단기 부동자금이 늘어나는 것이 반갑지는 않다. 자금 운용이 쉽지 않은데다 주식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거나 새로운 투자처가 부상하면 은행권에 머물던 시중 자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출구전략에 따라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정기예금을 통한 자금 조달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 점도 꺼리는 이유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단기 정기예금보다는 장기 예금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장기 예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느라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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