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姓은 내가 만든다" 귀화 외국인들 창성창본 시대

입력 2010-07-10 08:08:33

안녕하십니꺼. 지는 예 하일이라예. 영도 하씨 시조니더.

첫번째 사진은 하 일씨. 두 번째 이 참씨. 세 번째 사진설명=남편의 성을 따르고 본만 다륵 한 전에덴(오른쪽), \
첫번째 사진은 하 일씨. 두 번째 이 참씨. 세 번째 사진설명=남편의 성을 따르고 본만 다륵 한 전에덴(오른쪽), \'대구 호씨\'의 시조가 된 호유미 씨가 대구 달서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다정하게 사랑의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뿌리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성(姓)과 본(本)은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길게는 수천 년, 짧게는 수백 년을 이어온 본관(本貫) 문화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전통 본관에서 찾을 수 없는 새로운 본과 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 일가를 만드는 사람은 대부분 귀화 외국인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창성창본(創姓創本·성과 본을 만드는 것)이 사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현황

창성창본은 가정법원이 있는 지역에서는 가정법원, 없는 곳에서는 지방법원에서 할 수 있다. 전국 현황은 법원행정처에서 집계한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창성창본 사례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2천530명에서 2006년 1천523명으로 잠시 줄었으나 2007년 1천927명, 2008년 2천810명, 지난해에는 4천884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5월까지 2천405명이 새로운 성과 본을 등록했다. 대구의 경우 2008년 94명, 2009년 183명이 창성창본을 했다. 올해는 6월까지 145명이 한 가문의 시조(始祖)가 된 가운데 37명이 신청 후 허가를 기다리고 있어 무난히 지난해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새롭게 출현한 성과 본은 다양하다. 얼핏 꼽아봐도 독특하다. 2005년 봉황 고, 안심 정, 한간 전, 2006년 대마도 윤, 몽골 김, 삼계 윤, 동복 오, 몽한 허, 산동 우, 야성 송, 용궁 김, 2007년 봉황 신, 청도 후, 2008년 길림 사, 려산 송, 2009년 태국 태, 라주 라, 건지화리 오, 광동 진, 상율 전, 올해는 대구 호, 서생 김, 왕장 박, 우주 황씨 등이 새롭게 등록됐다.

◆왜 외국인이 많나

성과 본을 바꾸거나 만드는 것이 매우 까다로운 내국인에 비해 귀화 외국인은 비교적 쉽게 새로운 성과 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국인의 경우 가족관계등록부가 없는 경우에만 창성창본이 가능하다. 또 성과 본을 변경하는 것도 재혼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고통받는 경우 등으로 극히 제한돼 있다. 반면 외국인은 귀화 후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 때 자신이 원하는 성과 본을 적어 넣으면 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귀화한 외국인 2만5천44명 가운데 19.5%가 본래 이름을 버리고 한국식 이름으로 등록하면서 성과 본을 새로 만들었다.

◆유형

성은 배우자 또는 한국의 대표 성을 따르는 경우가 가장 많다. 본은 보통 자신의 출생 지역 또는 살고 있는 한국의 지명에서 따온다.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성과 본을 새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외국인 출신 공기업사장 1호인 이참(56) 한국관광공사 사장이다. 1986년 귀화하면서 그는 독일 이씨의 시조가 됐다. 독일은 그가 태어난 조국이다. 처음에 이 사장은 '한국을 돕자'라는 뜻에서 나라 '한', 도울 '우'자를 사용해 이름을 이한우로 지었다. 그러다 2001년 '한국 사회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참여할 '참'을 사용해 이참으로 개명했다.

방송인이자 국제변호사인 하일(48) 씨의 본은 영도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시 영도구에서 오랜 기간 산 것이 인연이 돼 1997년 귀화하면서 영도를 본으로 삼았다. 그는 "바닷가에서 살았기 때문에 물 하(河)를 성으로 했고 처음으로 일가를 만든다는 의미로 한 일(一)을 이름으로 선택했다. 내 조상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것과 내가 영도 하씨 시조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말했다.

10년 전 결혼하면서 대구에 온 전에덴(37·여·달서구 신당동) 씨는 남편과 성이 같다. 필리핀 이름이 반티엔 에덴인 그녀는 2003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남편을 따라 전으로 성을 정하고 본만 다르게 했다.

많지는 않지만 원래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2006년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의 호유미(24·여·서구 내당동) 씨의 본명은 호 티메하이. 그녀는 지난 1월 한국 이름으로 개명하면서 성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베트남 성을 그대로 사용했다. 호 씨는 제2의 고향인 대구를 본으로 선택해 대구 호씨 시조가 됐다.

한편 창성창본한 외국인들도 우리나라 상위 4대 성씨인 김·이·박·최를 선호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말 서울가정법원에서 허가한 국적취득 외국인의 창성창본을 분석한 결과 110명 가운데 51명이 김씨 성을 가졌고 이어 이씨(15명), 박씨(14명), 최씨(11명) 등의 순이었다.

◆왜 개명하나

귀화 외국인들이 본명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식 이름으로 바꾸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의 편리함 때문이다. 외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경우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한다. 호유미 씨는 "자기 소개를 할 때 베트남 이름을 말하면 잘 알아 듣지 못해 여러 번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부르는 사람의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 듣기에 거북하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고 나서는 그런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전에덴 씨는 "관공서에서 서류를 뗄 때 또는 서류를 작성할 때 외국 이름을 쓰면 여러 가지로 귀찮을 때가 많다"고 했다.

아이 때문에 한국 이름을 갖는 경우도 적잖다. 외국인 특히 제3세계 국가 출신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외국인 자녀들은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인도풍 식당을 운영하다 지금은 부산에서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파키스탄 출신 셰크 레이스(41) 씨의 한국 이름은 김부성이다. 한국 생활 20년째에 접어든 그는 파키스탄에서 대학을 다니다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한국으로 왔다. 12년 전 부인(42)을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그는 2004년 귀화했다. 아들(11)과 딸(7)의 장래를 위해서다. 당시 두 아이는 부인 호적에 올라 있어 학교에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외국인 신분으로는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개명 당시 파키스탄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려다 자식들이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해 한국 이름으로 바꿨다. 김 씨는 "귀화하면서 부르기 쉽고 기억되기 쉬운 성을 찾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김 씨를 선택했다. 본은 당시 거주하고 있었던 부산구 사상구 주례동에서 땄다. 아이들에게 주례 김씨를 물려 주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현모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창성창본 과정을 보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타성을 엿볼 수 있다. 제도적으로 한국식 이름을 취득하라고 강제하지는 않지만 우리 성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암묵적 강제를 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들이 귀화할 때 꺼리낌 없이 자신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느냐 여부는 외국인 인권의 향상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한 지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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