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과일향기에서 피어나는 행복한 인연
그는 인연을 믿는다. 또 그는 남을 돕는 것, 아니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봉화에서 태어났다. 대구서 살다 경기 좋다는 말에 2004년 구미에 정착했다는 과일가게 주인 박대응(54)씨.
그가 휠체어를 타고 가게 앞 약간 경사진 언덕길을 혼자 낑낑거리며 오르던 한 소녀 장애학생을 만난 것은 지난 2008년 가을. 성도 이름도, 가게 옆 아파트 몇 층에 사는지, 누구와 살며, 부모가 무엇을 하는지 아무 것도 몰랐고 묻지도 않았다. 그는 소녀를 탄 휠체어가 가게 앞을 지나가는 매일 오후가 되면 잠시 장사를 접고 휠체어를 밀어주었을 뿐이다.
"아저씨, 이러시면 자립심을 키울 수 없대요. 그러니 조그만 밀어주세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해맑은 표정을 한 소녀의 몇 마디 말이 너무 듣기 좋았다.
결혼 14년 만에 어렵게 얻은 외동아들의 생명이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웠던 순간을 보내면서 가슴 졸이기도 했던 그였기에 소녀도 자신의 아들과 다름없이 소중했다.
그에게 소녀는 두 번째 인연이었다. 10년 전 교통사고로 부모와 할머니를 잇달아 잃었던 한 소년에게 중학교 진학 때 책가방, 노트, 과일, 용돈 등을 건네는 것을 시작으로 수년간 마음을 전했던 첫 번째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는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소녀가 부모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학교도 그만두었다는 안타까운 풍문만 듣게 됐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그는 10년 전 맺었던 소년과의 인연이 그랬던 것처럼 소녀도 애써 찾지 않기로 했다. 혹여 부담이 될까 걱정이 돼서다. 그저 해맑은 소녀가 어디에선가 용기를 가지고 잘 지내길 빌 뿐이다. 그리고 다시 우연히 세 번째 인연과의 만남을 기다리기로 했다.
박씨의 삶터인 구미시 봉곡동 현대아파트 앞 작은 가게 '광명청과'에서 '이러한 인연이 전생의 인연이었기에 기꺼이 더불어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말이다. 오늘도 지나간, 그리고 다가올 인연을 생각하는 박씨의 얼굴이 소녀와 소년의 그것처럼 해맑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