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를 구미 당기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11)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구미지회 양성재 지회

입력 2010-07-09 07:00:58

"얼굴의 눈보다 마음의 눈이 더 빛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보이는 세상'을 개척하고 있는 (사)경북시각장애인연합회 구미지회 양성재(45) 지회장(구미장애인심부름센터장)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그의 말처럼 불가능보다는 가능을,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1982년 구미전자공고에 입학해 3학년 때인 1984년 구미 한 기업체에 취직했다. 참 잘나갈 수 있으리란 생각만 가졌었다. 하지만 1997년 말부터 그의 앞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해에는 오른쪽마저 볼 수 없었다. 원인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시신경 위축'이었다. 실명에 따른 비관으로 아예 두문불출, 세상과 단절해버렸다. 이미 결혼하고 1남 1녀를 둔 가장이었던 그에게 절망의 나락은 그저 주저앉을 수도 없는 형벌이었다.

합창단의 테너로 활약하던 즐거움도 더 이상 악보를 볼 수 없기에 포기해야 했던 현실을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가족이 있고 아직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그였기에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세상과 맞서기로 했다.

과로로 인한 실명을 증명해내며 산재보험 혜택도 받았다. 참 힘겨웠지만 전례가 없다며 산재혜택을 거부하는 당국을 상대로 국내외 자료를 확보하며 젖 먹던 힘을 다해 싸운 그는 결국 산재판결을 받는데 성공했고 드디어 고립에서 벗어나 세상과의 소통에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는 상상도 못했던 시각장애가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1천명이 넘는 구미지역 시각장애인들 모두의 것임을 알았다. 이후로 그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부끄러움을 떨쳐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 연합회를 알게 됐고 어둡고 긴 암흑의 세월을 지나 2001년부터 새 삶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컴퓨터 업무를 담당했던 만큼 세상과의 소통에도 컴퓨터를 활용했다. 다른 시각 장애인들에게도 음성서비스가 제공되는 컴퓨터 화면 읽기프로그램 교육을 했다. 2002년에는 시각장애인들이 주로 집안에 머무는 탓에 몸이 허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걷기사업을 펼쳤다.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체 직원들이 도움을 줬다. 업체는 나아가 시각장애인들과 업체 도우미들의 걷기운동을 위한 이동에 필요한 차량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보다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2003년 구미1대학(사회복지과)에 입학, 전문적인 교육도 받았다.

2005년부터는 구미지회장에 올라 어느 때보다 더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후원시스템 구축, 매주 화요일의 보행훈련, 볼링교실과 마라톤 및 스포츠 댄스 지원 등 스포츠사업 추진, 시각장애인 가정의 시장보기와 반찬만들기 애로 해결을 위한 반찬 지원사업 등이 그것이다.

구미시 느티나무봉사회 회원들과 함께 매년 경로당을 찾는 안마 봉사활동도 했다.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그의 관심과 할일은 끝이 없다. 지난해 지회장으로 연임된 그는 올 4월부터는 시각장애인들의 안정적인 생계유지에 도움을 주고 기업체 근로자들의 건강챙기기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근로자 안마서비스를 벌이고 있다.

그는 이를 더욱 확대해 시각장애인들과 기업체의 '위-윈' 사례를 만들겠다며 기업체들의 관심과 지원을 원하고 있다. "우리 표정이 밝아야 가족과 주위사람들도 밝아집니다. 그러면 세상은 따뜻한 삶이 될 것입니다."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말이다.

그는 시각장애인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시각장애인주간(晝間)보호센터나 300개가 넘는 경로당 중 하나 정도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경로당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구미시각장애인협회설립 30주년을 맞은 그의 또 하나의 바람은 '시각장애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퍼지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의 눈보다 마음의 눈이 더 빛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단다. 그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맑은 눈을 가진 남자임에 틀림없다.

매일신문 경북중부지역본부· 구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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