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이 미래다]<1>대구의 현주소

입력 2010-07-07 07:34:09

1인당총생산 17년째 전국 꼴찌, 이제 그만 바닥찍자

대구테크노폴리스 개발 사업 현장.
대구테크노폴리스 개발 사업 현장.

대구 경제의 질은 날로 나빠진다. 1970, 80년대 섬유산업의 호황과 함께 대구는 전국 3대 도시로 명성을 날렸지만, 이제는 17년째 전국 최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6개 시·도 중 근로자 1인당 연간 급여(2008년 기준 2천114만원/ 1위 울산 3천271만원)가 가장 낮은 도시, 매출 1조원 대기업이 하나도 없는 도시라는 우울한 지표들만이 대구의 현실을 설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대구는 왜 이렇게 끝도 없이 몰락하고 있는가?

◆민자사업 부동산·판매시설 집중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각 지자체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민자유치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적은 국비나 지방비 투자로도 원하는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독'이 숨어 있었다. 민자유치가 민간업자에 대한 과다한 수익보장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지역경제의 발목을 붙잡게 된 것. 특히 이런 과다한 수익보장은 주로 부동산과 판매시설 허가에 집중돼 있다.

10년 이상을 표류해 온 이시아폴리스의 경우 민자 출자 기업들의 수익을 보장해주기 위해 당초 계획됐던 것보다 유통시설과 택지 비중을 높였다.

대구 돔야구장 건립 사업은 몇 년째 계속 표류 중이다. 포스코건설이 2천500억원을 들여 돔 야구장을 짓는 대신 4천 가구에 달하는 공동주택 개발권을 요구하면서 결국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 대구시는 아파트 미분양 물량을 생각하면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구스타디움 서편 주자창 지하공간 개발사업에는 대규모 쇼핑센터를 입점시키기로 했다. 대구시는 스타디움의 활용도를 높여 관리운영상의 적자를 해소할 방안으로 쇼핑몰 개발을 미끼로 내놓은 것.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현재 대구에 들어서 있는 판매시설만도 충분히 포화상태"라며 "개발을 이유로 자꾸 판매시설 허가를 내주다 보면 결국 대구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소비 도시의 이미지만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사실 민자사업을 시행하는 데 있어 부동산 개발권이나 쇼핑단지 개발권만큼 손쉽게 '돈'이 되는 수익사업이 없다. 하지만 쉬운 만큼 위험성도 크다. 줄줄이 허가를 내 준 부동산으로 말미암아 대구는 전국에서 강원도 다음으로 완공 후 미분양된 아파트가 많은 도시가 됐고, 부동산 투기 막차를 탄 서민들의 자금줄이 경색되면서 대구 경제의 '암초'가 되고 말았다.

판매시설 포화현상 역시 마찬가지다. 벌어들이는 것 없이 쓰기만 하다 보니 대구경북민들의 자금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시설 유치 없이 자꾸 대규모 판매시설만 늘어나게 되면 지역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수도권으로 가져다주는 현상만 심화된다"며 "이 같은 자본 유출은 결국 지역 경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끌 여건이 없다

각 지자체마다 너도나도 '대기업 유치'에 혈안이 돼있다. 대구경북 역시 마찬가지다. 매년 대구시는 '대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매정하게 고개를 저을 뿐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대구는 '투자할 매력이 전혀 없는 그저 그런 도시'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담당자들이 내세우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인재가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우수한 인재 공급이 힘들뿐더러, 수도권 인재들이 대구로 오려 하지 않는다는 것. 최근 LG연구소가 LG그룹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수도권이 아닌 구미 등 지방 도시에 파견할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고 설문조사한 결과, 70%가량이 '사표를 쓴다' 혹은 '이직을 하겠다'로 응답했다. 지역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정주 여건 역시 대기업들이 대구 투자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타 지역에 비해 턱없이 비싼 부동산 가격에다 교통 접근성 불편, 자녀 교육 등의 문제가 겹치면서 '지방에서는 살기 싫다'는 근로자들이 부지기수인 것.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대구로 발령내는 즉시 사표를 쓰겠다는 직원이 절반 이상인 상황에서 누가 지역에 투자를 하려 하겠느냐?"며 "최소한 지역에서라도 우수한 인재가 공급돼야 하지만 현재 대구의 교육수준으로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대기업이 오겠다고 해도 당장 내놓을 부지조차 없다는 것도 문제다. 현재 대구경북에는 국가과학산업단지와 대구테크노폴리스,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경제자유구역 등이 조성 중이지만 적어도 2, 3년은 기다려야 대기업을 모실 수 있는 형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구시 한 관계자는 "한 대기업 계열사가 신사업 투자를 위해 33만㎡(10만평)의 땅을 요구했는데 그만한 땅을 당장 내놓을 형편이 아니어서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경북이 물 산업 광역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투자로 방향을 선회한 ㈜코오롱의 경우에도 진량2산업단지에 5만㎡ 규모의 공장 부지를 요구했지만 마땅한 터가 없어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생각 버려야

얼마 전 만난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대구경북 공무원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정권에서 대구경북 공무원들은 늘 중앙 정부에 끈이 없어서 일을 못하겠다고 푸념했어요. 정권이 바뀐 지금은 무조건 예산 달라고 조르기만 해요. 자료를 제시하고, 끈질기게 설득을 해야 하는데 대구경북은 인맥과 정에 기댈 생각만 합니다. 게다가 몇 번 만나다가 안 되면 지레 포기해요."

다른 경제계 인사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대구는 아직까지도 제왕적 이미지에 물들어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는데도 아직 옛날의 영광에만 사로잡혀 헤어날 줄을 모르는 것이지요. '잃어버린 10년' 이야기를 할 때면 정말 '대구는 도저히 안 되는 도시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사람들이 '대구'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보수성, 폐쇄성이다. 벌써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뉴스조차 안 되는 얘기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다. 그 근간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대구경북민들의 뿌리 깊은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구동모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가 남이가?'는 좋게 풀이하면 '정'과 '의리'가 되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패거리 의식' '타인에 대한 배타성' '봐주기 정서' 등으로 풀이될 수 있다"고 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대구 수성갑)은 "대구경북은 노력은 하지 않고 오직 '정'과 '끈'에만 매달린다"고 했다. "기업이 올 수 있는 여건을 갖추거나, 올 수밖에 없는 제안을 잘 꾸며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아예 없어요. 가만히 앉아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 기다려요. 요즘 기업이 어떤데, '이곳은 이렇게 매력적인 투자처다'라고 설득할 근거도, 전략도 없는 곳에 오겠어요? 정부 지원에만 매달린다고 답이 나오지 않아요."

영남대 이재훈 교수는 "지금까지 대구의 대기업 유치 전략은 '우리가 남이가?' 식의 '무대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지역이 하고 싶은 산업에 대해 다른 지역이 따라올 수 없는 작품이나 투자 여건을 만든 후에 기업의 눈길을 빼앗거나 정부 도움을 구하는 것이 순서가 맞다"며 "항상 기업 눈치만 보며 기다리다가는 매번 뒷북만 칠 수 있다"고 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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