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피맛골은 좁은 골목길이다. 말을 피한다는 피마(避馬)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이곳에는 서민의 애환이 서려 있다. 조선시대 때 지체 높은 양반이 행차를 하면 백성은 좌우로 길을 물리고, 엎드려야 했다. 행차가 너무 잦아 번거롭자 이를 피해 도성 안을 돌아다닐 수 있던 뒷길이 피맛골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피맛골은 서민의 일상과 함께했다. 개발에 밀려 점점 좁아지긴 했지만 선술집, 연탄불 돼지고기구이, 고등어 구이집이 많이 들어섰다. 값이 싸, 생활에 찌들거나 독재 정권에 대한 울분을 터트릴 곳이 없는 사람들이 저녁이면 하나, 둘씩 이곳에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토론과 한탄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재개발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피맛골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개발을 하겠다고 하지만 옛 정취를 살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러한 서민의 애환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피맛골을 그린 창작 뮤지컬 '피맛골 연가'가 곧 무대에 오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선비와 사대부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9월 초 공연을 앞두고 인터넷 예매 중인데 관심이 높아 판매를 앞두고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고, 판매 한 시간 만에 인터넷 판매 1위에 올랐다.
'피맛골 연가'는 서울시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의지에 따라 2008년 상반기부터 공모를 통해 작품을 선정하고, 세종문화회관과 공동으로 제작에 들어갔다. 제작비가 무려 21억 5천만 원이다. 서울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시의회의 반대가 만만찮았으나 시장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필요성을 설득했다 한다. 이와 함께 서울시는 앞으로 이 작품의 상설 공연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렇다할 문화 콘텐츠가 없는 대구로서는 참 부러운 일이다. 국제오페라축제와 뮤지컬축제가 열린다고 자랑은 하고 있지만 대구를 내세울 만한 콘텐츠는 없다. 만들려는 노력조차 모자라는 것 같아 답답하다. 물론, 예산이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늘 돈타령만 하다 보면 그 어느 것도 시작할 수 없는 법이다. 국제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동네 잔치를 하는 것보다는 한 해 행사를 아예 거르더라도 한 번쯤은 이런 시도를 하면 어떨까 싶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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