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군이 과감히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자 당황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는 지휘부를 이끌고 김천 방면으로 후퇴하던 제1집단군사령관 김웅 중장에게 "제1집단군 휘하 주력부대인 서울사단(제3·4 돌격사단)을 즉시 서울·인천지역 방어선으로 철수시키고 잔여부대는 소백산 계선(界線)과 낙동강 교두보를 사수하라"는 긴급 정치명령을 하달했다. 이 명령을 접수한 김웅은 갑자기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펼쳐들고 있던 작전지도를 집어던지고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다가 "타마디! 초우 타마디!(망할 자식! 고약한 새끼!)" 하고 중국어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제1집단군의 주력부대는 이미 낙동강 남안에서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금강산! 지리산!"의 암호명을 아무리 외쳐 봐도 주력부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통신이 두절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주력부대를 서울과 인천으로 빼돌리라니 김웅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노기 띤 고함소리에 군사위원들과 참모들이 새파랗게 질리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그가 중국어로 "타마디! 초우 타마디!"라고 외친 것은 최고사령관 김일성을 향한 직설적인 욕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웅은 김일성의 명령을 묵살하고 잔여부대의 전열을 정비하면서 대구 침공을 위해 전투병력을 다부동 전선으로 집중 배치한다. 그리고 자신은 김천에서 지휘부를 이끌고 낙동강 서안(西岸)인 선산 방면으로 후퇴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웅의 독단적인 조치가 훗날 제2집단군 사령관 김무정과 함께 반혁명·반당분자로 몰려 패전의 책임을 지고 숙청의 고배를 마시는 구실(이적행위)이 되고 만다. 패전의 책임을 연안파에 돌린 김일성의 속셈이었다. 김무정이 중국대륙에서 조선의용군 사령관으로 있을 때 김웅은 그 아래 지대장을 맡고 있었고 6사단장 방호산은 중대장을 맡았었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동부 전선에서도 8월 하순부터 북한군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포항의 기계 방면과 경주의 안강 방면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발이 묶여 있던 적 12사단은 1만여 병력을 소진하고 겨우 1천500여 명만 살아남아 비학산 방면으로 후퇴했다. 적 지휘부는 766군 유격부대를 12사단에 편입시켜 5천여 명의 전투병력으로 부대를 재편성하고 안강·기계 방면에 재투입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동해안의 영덕·강구를 치고 포항 점령을 시도하던 5사단도 고전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청도 터널 파괴 작전이었다. 766군 유격부대는 특공대를 투입해 안강을 정면 돌파하고 경주와 건천을 거쳐 청도로 공격해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이마저 쉽지 않았다. 안강에는 이미 국군 3사단이 포진해 있었고 수도사단이 증원된 데다 기계 방면에도 제17독립연대가 배치돼 반격전에 돌입해 있었기 때문이다. 뚫고 나갈 여지가 없었다.
공산군 최고사령부는 안동전투에서 독전에 나섰던 강건 총참모장(합참의장)이 지뢰사고로 죽고 지휘체계가 흔들리면서 얼마나 다급했던지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경주 북방의 돌출부인 곤기봉(203고지)에 민족보위상 최용건을 보내 독전에 나서기도 했다. 곤기봉 전투에는 12사단의 잔존 병력과 766군 유격대의 혼성부대가 투입돼 있었으나 무엇보다 청도 터널을 폭파하기 위한 출구 전략이 시급했다.
최용건은 최전선에 직접 나타나 "나는 민족보위상 최용건 대장이다. 영웅적인 조선인민군 전사들아! 앞으로 나가라. 물러서는 자는 인민의 적이다!" 하고 악을 쓰며 독전했다. 중국 팔로군 휘하 조선의용군 사령관 출신인 그는 제2집단군 사령관 김무정의 선배로 1946년 북한으로 들어와 조선인민군 창설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틀 만인 9월 17일 끈질기게 무모한 공격만 감행해오던 적은 하루 밤 사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전선 사령부의 후퇴 명령에 따라 일단 비학산으로 물러난 적은 남진할 때의 진공로이던 동해안을 따라 창황히 후퇴 작전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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