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항명

입력 2010-06-29 10:39:59

기원전 326년, 알렉산더가 인도 서부의 히피아스 강둑에 이르렀을 때다. 오랜 원정과 폭우에 고생하던 군대는 알렉산더에게 항명을 한다. 어떤 항명도 피로 되갚았던 알렉산더는 결국 회군을 결정했다. 항명 군대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귀환 길에 알렉산더 군대는 저항하는 인도 부족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한다. 절대자인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간접적으로나마 경고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경찰이 항명 사태로 시끄럽다. 경찰대 출신인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조현오 서울경찰청장과의 동반 사퇴를 주장한 것이다. 그는 최근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불거진 피의자 고문 사건 의혹이 조 청장의 실적 강요가 빚어낸 극단적인 결과라고 했다. 경찰 수뇌부는 채 서장을 직위해제하고 실적 평가 기준을 재검토하는 등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현직 경찰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직속상관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은 전례가 없는 것이어서 당분간 큰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찰은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이다. 대구에서는 여대생 납치 사건에 초기 대응을 제대로 못해 인명 피해를 불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현직 경찰이 성매매, 성추행과 같은 파렴치 범죄에 연루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고문 의혹 사건이 터지고 항명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답답할 뿐이다.

2천500년 전 알렉산더를 돌아보자. 그에게 전쟁은 계륵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동진은 끝이 없고, 회군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던 차에 항명은 아주 적절한 핑계가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항명은 상명하복을 절대 원칙으로 하는 군대나 경찰 조직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빚은 원인에 대한 자기반성과 개선이 없다면 또 다른 항명을 부를 수밖에 없다.

알렉산더의 회군처럼 경찰도 이번을 핑계로 삼아 철저한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이번 항명 사태가 실적 평가에서 꼴찌를 한 경찰 간부의 단순한 불만 표출로 치부돼선 안 된다. 경찰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조직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 내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민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국민의 신뢰를 받고 조직도 살릴 수 있는 길이 나온다. 나아가느냐, 주저앉느냐는 오로지 경찰의 몫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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