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도서관

입력 2010-06-26 07:58:09

'교장실을 도서관으로…' 43년전 교장선생님 그리워요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한무석(대구 서구 비산동)

다음 주 글감은 '장마'입니다

♥ 책 읽는 어르신들 '한폭의 그림'

시골에서 자란 나는 서점이나 도서관은 한 번 구경도 못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교실 한 칸이 책으로 가득한 학교 도서실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그 도서실은 시골 소녀에게 또 다른 세상이었고 호기심을 채워 주는 곳이었으며, 꿈을 키웠던 장소였습니다. 오십을 살면서 학교에서 배운 교육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학창시절 읽었던 책들은 기억 속에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지금까지 살아가는 에너지의 근원이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숫자라고 하지만 지금은 도서관이 많이 생겨 반갑고 행복합니다. 우리 집 근처에도 장미공원에 자리 잡은 성서도서관이 있고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전경과 공원을 뛰노는 아이들, 도서관에서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돋보기 너머로 책을 보시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어릴 적 큰집 할머니는 늘 책을 가까이하셨고 글을 모르는 집안 며느리들에게 한글도 가르치시며 제가 읽던 세계문학전집을 같이 보시면서 대화가 통했던 멋쟁이 할머니로 기억합니다. 저도 도서관을 이웃하여 멋쟁이 할머니로 늙어 가고픈 소망을 가져봅니다.

갈수록 각박해진다는 세상도 책 읽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도서관에서는 각종 문화강좌도 무료로 열고 있어 그야말로 주민의 쉼터입니다. 더운 여름 더위도 식히고 지식이나 교양도 쌓을 수 있는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정종숙(대구 달서구 이곡동)

♥ 우리들의 작은 도서관

도서관 하면 모두들 넓고 큰 도서관만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43년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친구들의 추억 속에는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마련된 작은 도서관이 있다. 당시 분교였던 우리 학교는 인근 3개 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들로 1, 2, 3학년 모두 6학급이 있었다. 교무실도 없어 선생님들께서는 복도에서 수업 준비를 하셨다. 물론 도서관은 상상도 못했다. 가끔 K대학 도서관을 기웃거려 구경은 했어도 들어갈 수는 없었다. 6학년이 된 해에 우리 교실 바로 옆으로 교장실이 옮겨 오게 되었다.

친구들과 장난치며 뛰어다니다가도 교장실 앞에서는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다니고는 했다.

중학교 입시 공부도 바빴지만 책읽기를 좋아한 언니와 내가 밤늦게까지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혹시나 졸다가 불이라도 날까봐 어머니께서 몇 번이고 우리 방을 들여다보고는 하셨다. 어느 날 친구 몇 명이서 공부하다 어두운 줄도 모르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우리들은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었으니 이제 혼나겠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서니 "내일부터 수업 마치고 여기 와 책도 보고 공부해도 좋다"고 하시면서 열쇠까지 주셨다.

"마지막에 가는 사람은 남포등 끄고 '소사 아저씨'(관리아저씨)께 얘기해야 된다"고 당부하셨다. 처음 들어간 교장실을 둘러보며 우리는 너무 좋아 서로 얼싸안았다.

책장에 꽂힌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보다 일찍 등교하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가끔 시간을 내어 여행 다녀온 얘기, 살아오신 얘기, 공부하는 방법 등을 들려주시며 우리들에게 꿈을 키워주셨다.

호랑이같이 무서웠던 교장 선생님이 차츰 아버지같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후 누가 시키지 않아도 교장실 청소를 교대로 하게 되었다. 지금은 연세가 많아 아마도 고인이 되셨을 교장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때는 철이 없어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드리고 졸업했습니다. 우리들의 작은 도서관, 영원히 잊지 않을 겁니다.

여종희(대구 남구 대명 4동)

♥ 대학도서관 친구 죽음에 한때 방황

텅 빈 강의실에서 책을 볼까 하다 나는 이내 도서관으로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학생 데모가 극에 달했던 시절이라 사복 차림의 기관원들이 가끔씩 강의실을 기웃거리곤 하던 1970년대 초였다. 열람실에서 필요한 책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왠지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잠시 후, 본관 앞으로 모여든 수백 명의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정문으로 나아가는 소리. 나도 마침내 책을 덮고 말았다. 언제나 열람실 한쪽을 지키고 있던 그 친구의 모습도 그날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 하면 유난히 떠오르던 그 친구. 전공보다 철학을 더 좋아했던 그는 언제나 책상 혹은 열람실 바닥에 앉아 진부할 정도로 철학책을 탐닉하곤 했다. 때론 도서관 앞 풀밭에 앉아 몇 시간이고 토론을 벌이던 친구. 그의 어렵던 가정환경과 내가 알지 못하던 또 다른 그만의 삶의 무게로 항상 고뇌에 빠져 있던 모습. 때론 근처 주점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는 풀밭에 누워 풀잎을 질겅거리던 그의 외로운 모습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 또한 가끔씩 들르던 도서관에서 함께하던 그와의 시간이 소중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후 진지했던 그의 모습을 도서관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고 나도 더 이상 도서관을 찾을 용기가 없어졌었다.

37년 전 그때,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들게 했는지 되돌아보면 아련하게 가슴이 저려오지만 때때로 열람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인터넷만 켜면 지식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요즘과 달리 언제나 박물관과 같은 중후함이 있었던 도서관. 멀고 먼 선사시대까지를 눈으로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라면 도서관은 글로 집약된 지식을 읽으며 시간 여행을 유추하곤 하던 곳이었기에 두 곳 다 성지 순례와 같은 엄숙함이 묻어나던 곳이었다.

아날로그 시절의 도서관과 지금의 도서관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중고교 시절, 시험기간에 친구들과 도서관에 모여 사각 가방을 둘러치고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밖에서 잡담이 더 즐거웠던 시절도 어언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다시 한 번 친구의 명복을 빌며.

서웅교(대구 수성구 범어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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