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도시로 변한 포항 길가에는 시체가 산더미"

입력 2010-06-24 10:47:33

17세 때 형산강전투 참가 최봉소씨

6·25전쟁 당시 17세의 고교생으로 포항 형산강 도하작전에 참전한 최봉소(77) 대한민국 학도의용군회 포항지회장은 "치열한 교전으로 피가 홍수를 이뤄 형산강 전투가 아니라 그야말로 '혈산강'(血山江) 전투였다"며 악몽을 떠올렸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참혹한 전장이었다"는 최 회장은 "살아 남은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대구상고 4년 재학 중이던 1950년 8월 2일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3사단 26연대 작전과에 배속된 그는 안강·기계전투와 포항전투 등에서 북한군에 밀려 형산강을 넘어 연일초교로까지 퇴각을 거듭했다. 그는 "전우들이 얼굴도 채 익히기 전에 죽어갔으며 병력 보충을 위해 피란길에 오른 10대부터 40대 남자까지 닥치는 대로 전쟁터로 끌려왔다"고 증언했다.

형산강 도하작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자포자기 심정으로 다리를 건넜다"고 말했다. 26연대는 1개밖에 없는 형산강 다리를 통해 포항시가지 쪽으로 진입을 하는데 반대편에서 북한군의 화력이 집중되는 바람에 총상을 입고 물에 떠내려가는 전우들이 속출했다. 지휘부는 총을 빼들고 '강을 건너지 않으면 모두 쏘겠다'는 명령을 하는 상황에서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최 지회장은 "시가지 탈환에 성공하고 돌아보니 포항은 폐허와 잿더미로 초토화된 유령도시가 됐고 길가에는 발가벗겨진 시체더미가 쌓여 있었다"며 "인민군의 만행에 이가 갈렸다"고 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인 해산진까지 북진을 계속하다 10월 31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퇴각해 흥남철수작전에 참가했다고 한다.

1969년 상사로 예편한 최 지회장은 좌우명으로 천하가 아무리 태평해도 전쟁을 잊으면 위태롭다는 뜻의 '天下雖安 忘戰必危'(천하수안 망전필위)를 되새기며 시민들의 안보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형산강 도하작전을 기념해 매년 9월 19일이면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전우들과 함께 형산강에서 국화를 뿌리며 전몰용사추념제를 지내고 있다.

포항·강병서기자 kb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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