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는 바쁘다. 요즘 자주 들리는 공익광고에서처럼 아이를 한눈팔지 않게 앞만 보게 해야지, 친구들과 어울릴 새가 없게 하여 남보다 앞서가게 해야지, 아이를 잠시라도 내버려두었다가 허황한 꿈이나 꾸게 해서는 안 되지, 아이도 학부모도 숨 돌릴 틈이 없다.
이렇게 바쁜데 학교에서 자꾸 부른다. 아이 교실 청소, 등교 지도, 급식 봉사하러 오라 하고, 학부모 교육이 있으니 와서 배우라 하고, 학부모 총회에 얼마 전에 참석한 것 같은데 그것 말고도 무슨 무슨 위원회와 모임이 있으니 참여해 달라 한다.
거의 매주 아이가 들고 오는 가정통신문도 읽고 그냥 버릴 수가 없다. 대부분의 가정통신문 내용이 그저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뭔가 의견이나 결심을 써 주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문자로는 내 자녀 바로 알기 서비스에 등록해 달라고 낯선 사이트의 주소가 찍혀 온다.
학부모를 향한 학교의 요구와 서비스가 금년 들어 부쩍 늘어난 것을 환영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부담스러워하는 학부모도 있다. 어떤 입장에 있든지 가치 있는 일이라면 버거워도 감당해야 할 것이고, 의미 없는 일이라면 여유가 있어도 뒤로 물러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즘 학교와 학부모가 서로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내용은 크게 보아 자원봉사와 학부모 교육, 그리고 학교 모니터링이라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교육 활동이나 그에 따르는 지원 활동에 학부모의 봉사 손길을 기대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초등학교에서는 등굣길 녹색어머니회의 교통안전지도를 비롯하여 학교 도서관 봉사, 학습 자료 제작 도우미 역할 같은 일을 한다. 중등학교에서는 시험 감독이나 학생 상담, 교복 공동구매,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사회 소외집단을 찾아가서 노력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학부모 자원봉사는 학부모의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단순하고 비전문적인 인력 봉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이제는 학부모의 전문적인 능력이나 기술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옮겨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할 때 학부모로서의 교육 참여에 더욱 가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학부모 교육을 살펴보면 지금까지의 학부모교육은 '다도'나 '꽃꽂이'와 같이 학교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생활 교양을 위한 강좌가 많았다. 이런 교육이라면 굳이 학교에서 학부모의 이름으로 모여서 할 필요가 없다. 백화점 문화센터나 주민자치센터를 이용해도 이런 강좌는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학부모 교육은 '자녀와의 대화법'이나 '학교 교육과정의 이해'와 같이 자녀 지도나 교육 정책에 대한 것으로 학교가 학부모로부터 이해와 협력을 얻을 수 있는 강좌들을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학교가 강좌를 개설하고 학부모를 부르기보다는 학부모회에서 스스로 필요한 강좌를 요구하거나 개설하고 학교는 이에 협조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갈 필요가 있다.
셋째, 학교 교육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학부모는 학교에 참여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묻지 않고서도 유효한 교육과정과 결과를 이끌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복잡해진 것만큼 다양한 욕구를 가진 학부모를 그런 식으로는 학교가 더 끌고 갈 수가 없다. 학부모의 요구 수준과 내용을 어떻게든 들여다보고 조율해 내어야만 교육적 성과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학교장이나 학교운영위원회에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학부모를 모이게만 하고 말을 못 하게 한다면 모이는 만큼 학교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 것이다.
학교가 펼쳐놓은 어떤 학부모 봉사, 교육, 그리고 위원회 활동을 하더라도 학부모들은 자신이 단순한 참석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자리를 채워주는 대신에 아이를 잘 봐달라고 부탁할 학부모는 이제 없다. 학부모들은 '참석'을 못 하더라도 학교에 자기 의견을 내어서 '참여'하고 싶어하고 있으며 그 참여가 자녀와 다른 아이들에게 직접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상현 대구시교육청 장학사·학부모정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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