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연(가명·15·달서구 도원동)양의 소원은 예쁜 구두를 한 번 신어보는 것입니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소원이지요. 하지만 중학교 3학년생인 가연이의 신발치수는 280㎝. 웬만한 성인 남성 발보다 커 맞는 구두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힙합 마니아들이 큼지막하게 즐겨 신는다는 남성용 운동화만이 가연이 발에 맞을 뿐입니다.
◆거인처럼 큰 가연이
가연이는 '말판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염색체 이상으로 골격계와 안구, 순환계 장애를 나타내는 병이라고 합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거미 다리처럼 길게 뻗어 자라고, 유독 큰 키가 특징입니다. 그래서 가연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친구들이 '거인'이라며 놀리는 것입니다. 키가 178㎝, 몸무게가 76㎏으로 여느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많이 크지요. 병으로 인한 증상이니 놀림을 받을 일도, 부끄러울 일도 아니지만 사춘기인 가연이에게는 큰 마음의 상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외모상의 문제뿐이라면 그리 걱정은 아니겠지요. 문제는 체구가 커지는 만큼 내장 기관들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장 기관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에서 겉모습만 커지다 보니 혈관은 늘어나 약해지고, 심장 이상과 수정체 이탈 등의 증세가 생겼습니다.
가연이의 병에는 별다른 치료약이 없습니다. 현재 복용 중인 약도 치료제는 아니고 진행을 억제시켜 주는 것일 뿐입니다.
가연이가 이런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7살 무렵이었습니다. 가연이의 어머니 강순희(45)씨는 "시력에 별 문제가 없던 건강한 아이였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문 앞에 사람이 들어와도 알아보지를 못했다"며 "이상하다는 생각에 병원엘 데려갔는데 '말판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고 했습니다.
◆따돌림으로 상처도 많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씨는 가연이가 진단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강씨는 "당장 이혼을 하고 홀로 두 딸을 양육해야 하다 보니 먹고살 길이 막막했다"며 "이 때문에 한창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아이들을 홀로 뒀던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미용일을 했던 강씨는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까지 일을 했지만 가연이의 병원비를 대는 일조차 힘에 부쳤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생계에 매달리는 동안 가연이는 어린 동생을 보살피며 혼자 자기 일을 해결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가슴속에는 응어리가 쌓여갔지만 그런 아픔을 가연이는 엄마에게 좀체 털어놓질 못했던 것이죠.
강씨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랬는지 속으로 삭이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며 "착한 아이다 보니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좀체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렇게 많이 힘들어하는 줄도 잘 몰랐다"고 울먹였습니다.
이제 가연이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인터넷 공간에서 낯모르는 친구들과 채팅을 하는 것을 더 즐기는 소극적인 아이가 됐습니다. 가상공간에서는 남들과 조금 다른 가연이의 모습이 드러나질 않으니까요. 강씨는 이런 가연이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강씨는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할 나이에 컴퓨터만 붙들고 있는 모습이 답답하다"며 "상담치료라도 받게 해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싶다"고 털어놨습니다.
◆조만간 심장수술 앞둬
지난 8년의 투병생활 동안 가연이는 안구 수정체가 떨어져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을 4차례나 받아야 했습니다. 대동맥이 늘어나 혈관이 약해지다 보니 늘 파열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혈압약을 통해 혈관 파열을 막고 있지만 임시방편이지요.
그래서 가끔 쇼크로 쓰러지기도 합니다. 지난 2월에도 가연이는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습니다. 의사는 "혈압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대동맥 파열을 막기 위해 혈압약을 먹는 것이다 보니 간혹 쇼크가 올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씨는 "몇 차례 쇼크로 쓰러지고 나서는 불안해서 아이를 혼자 집에 놔둘 수가 없어 요즘은 늦게까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다"며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도와줄 수 있지만 집에 혼자 있다 쓰러지면 손쓸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가연이는 오는 8월 심장 수술을 앞두고 있습니다. 심장 판막이 늘어나면서 자꾸만 혈액이 역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강씨는 또 걱정이 앞섭니다. 아직 자신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가연이가 큰 수술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지만 수천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마련할 길도 막막합니다.
가연이는 평생 수술을 반복하며 힘겹게 견뎌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강씨는 "가연이가 남들 절반의 생을 사는 만큼 남들 두 배로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도록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면 좋겠는데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는 엄마의 처지가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