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듣고 가슴이 뜨끔했던 한 공익 광고 문구다. 웬만한 학부모도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리 부모라고 우기고 싶어도 학부모임이 분명하니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이렇다. 아내로는 거안제미(擧案齊眉:남편을 공경해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들고 왔다는 뜻)한 동한 때 양홍의 부인이나 후한 때 송홍이 자랑한 조강지처(糟糠之妻: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함께 고생한 아내)가 최고가 아닌가 한다.
어머니로는 단연 맹자의 어머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모든 어머니가 마땅히 따라야 할 본보기였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오늘날 치맛바람과 같다. 묘지 근처나 시장터에서 산 것을 보면 궁핍했을 터인데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 환경 좋은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집을 팔고 전세나 월세로 갔거나, 은행 이자를 갚고 아들의 학비를 대려고 아침저녁으로 뼈 빠지게 허드렛일을 했음이 분명하다. 맹자는 이런 어머니의 정성과 본인의 용맹정진으로 성현의 반열에 올랐다. 요즘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 정도로도 비교가 안 된다. 맹자의 어머니야말로 인간 승리의 표본이고 모든 학부모의 우상이다. 오늘날 학부모는 성현까지는 언감생심이고, 그저 괜찮은 대학에라도 넣으려고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는 맹모의 길을 가는 것뿐이다.
이렇게 자위해 봐도 '부모냐 학부모냐'라고 윽박지르는 공익광고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학부모 모두가 동시에 '부모가 됩시다'라고 결사동맹을 해도 그 칼날은 여전히 날카로울 것이다. 그러나 이 광고 속의 학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아이를 학교~집~학원을 오가는 쳇바퀴 속에 가두고, 혼자 앞만 보며 꿈꿀 시간도 없이 공부와 씨름하는 기계가 되길 닦달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국가, 사회, 기업, 대학이 모두 한통속이 돼 경쟁력이라는 이름의 공부 기계를 요구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교육이 개인보다 제도와 정책의 사회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희망을 걸 만한 곳이 있다면 학교다. 많은 학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멀리 보고, 함께 가고, 꿈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가 충실한 자기 역할을 하면 많은 학부모는 자발적으로 부모로 돌아갈 것이다. 당장 내 아이 때는 아니더라도 내 아이의 아이, 혹은 그 밑의 아이 때는 학교에서만 열심히 배워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고, 학부모가 모두 부모가 되는 꿈 같은 세상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6월 2일은 교육감을 뽑는 날이다. 이번에 대구에서 출마한 후보는 9명이다. 경쟁률로는 전국 최고다. 함께 치르는 다른 지방 선거 후보자는 섭섭하겠지만 교육감 선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육감은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예산권과 인사권을 가진 막강한 자리이다. 교육감의 역할에 따라 학교가 바뀌고, 학교가 바뀌어야 학부모가 부모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커진다.
조금 힘들더라도 이들의 공약을 찬찬히 살펴보자. 또 인터넷 홈페이지도 들여다보자. 대학 총장이나 교수, 교장, 교육위원 등과 같은 화려한 이력은 중요하지 않다. 한 가지 공약을 하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왜 하겠다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후보여야 한다. 거대 담론을 되풀이하거나 내용 없이 솔깃한 공약만 늘어놓는 후보는 학교 살리는 일도 공(空)으로 돌릴 것이다.
좋은 교육감을 뽑은 뒤 이 발칙한 공익광고의 수정을 요구하자. '나는 멀리 보고 싶은데, 현실은 앞만 바라보라 합니다. 나는 함께 가고 싶은데 현실은 남보다 앞서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꿈을 꾸고 싶은데 현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꿈을 꿔도 늦지 않다고 합니다. 나의 문제인가요? 현실의 문제인가요? 거꾸로 된 현실을 바로잡는 일, 학교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鄭知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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