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동 지음/ 사계절 펴냄/ 1만2천원
#『황하에서 천산까지』 김호동 지음/ 사계절 펴냄/ 1만2천원
L형! 요즈음은 매일 출근길에 히말라야를 떠올립니다. 8월, 설산을 향한 비행기 표를 끊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을 견디기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4년 전, 눈을 머리에 이고 한 달 남짓 걸었던 안나푸르나는 그야말로 지독한 고독과의 고통스러운 싸움이었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기도 합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좁은 길에서 만난 안개는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시간이기도 했지요. 해서 악다구니를 쓰며 살았던 날들의 부질없음을 느끼게 한 시간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막스 브루흐(Max Bruch)의 '콜 니드라이'(Kol Nidre'신의 날)를 들으며 정말 한없이 울었던 시간, 짐을 지고 함께 산을 오르던 포터가 우는 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던 것은 아마도 그들은 삶이 경쟁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을 찾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또 다른 그리움에 일상으로 돌아오고 그것에 젖어 또 4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사랑이 그렇듯 시간이란 것은 망각을 가져오지만 첫사랑의 추억처럼 문득 다시금 설산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적자생존의 경쟁은 외로운 영혼에 슬픈 상처를 안겨주지만 기억과 추억이 있어 치유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것에 집착하지 않는 유목민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 떠남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어제는 밤이 늦도록 김호동의 역사 에세이 『황하에서 천산까지』를 읽었습니다. 가진 자들의 궁색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지은이의 책은 억압받는 중국 소수민족에 대한 연민(?)으로 제게 와 닿았습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실현되지 않은 간절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 인간이 간직해야 할 마지막 고귀한 정신만은 지키자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티베트 민족 편의 말미에 이렇게 쓴 것은 단순히 소수민족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가 가지는 인간의 역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우리의 역사는 늘 승자의 편에 서 있습니다. 아니 기록이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해서 과거의 누추함은 늘 패자의 것이 되어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찌 세상의 올바름이 승자의 것만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책에서 저자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가 아니라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우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티베트족, 회족, 몽골족, 위구르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이야기는 단순한 그들의 역사나 풍습의 소개가 아니라 그들이 걸어온 길 위에 배어 있는 고통과 소망이 무엇인지를 담고 있기에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랑탕(Langtang) 계곡, 그리고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길을 다시 꿈꿉니다. 고향을 떠나 척박한 히말라야를 딛고 사는 티베트 사람들을 다시 만나겠지요. 그들의 순수한 영혼과 또 그들에게 자신의 땅을 허락해 준 네팔 사람들의 가난하지만 넉넉함에 또 눈물 젖게 되겠지요. 밤을 꼬박 지새운 사람에게 새벽이 오는 것처럼 꿈을 꾸는 사람에게 순수한 영혼은 깃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늘 여여(如如)하시기를 빕니다.
전태흥<여행작가 ㈜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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