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또 하나의 엄청난 기록이 탄생했다. 미국의 어머니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댈러스 브래든(27)이 '꿈의 피칭'인 퍼펙트게임을 달성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4년차인 브래든은 이날 탬파베이 레이스의 27타자를 맞아 안타는 물론, 단 하나의 볼넷조차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끝냈다. 1루 베이스를 밟은 주자 역시 한명도 없었다.
134년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에서도 19번밖에 나오지 않은 그야말로 대기록이다. 70여년 역사를 지닌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이 기록은 15번밖에 달성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출범 29년째인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아직 주인공이 탄생하지 않았다.
퍼펙트게임은 투수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뤄낼 수 없다. 27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비의 절대적 도움과 운이 따라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다.
국내에서는 안타와 실점이 없는 노히트노런이 10번 작성됐지만 퍼펙트는 전대미문(前代未聞)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왜 퍼펙트의 순간을 볼 수 없었을까.
기억을 더듬으면 우리에게도 역사적 순간에 가슴을 졸였던 때가 있었다. 2007년 당시 두산에서 활약하던 외국인 투수 다니엘 리오스는 현대(지금은 넥센)를 맞아 9회초 원 아웃까지 퍼펙트게임을 펼쳤다. 남은 건 아웃카운트 2개. 하지만 강귀태에 좌전 안타를 맞으며 대기록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국내 투수로는 1997년 한화 정민철이 주인공이 될 뻔했다. 정민철은 당시 OB(현 두산) 타선을 상대로 8회 1사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갔다. 정민철의 구위는 좋았고, 역사 탄생의 긴장감이 그라운드 안팎에 감돌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로 공든 탑이 무너져버렸다.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태에서 타자가 1루에서 세이프 된 것. 낫아웃은 기록으론 분명히 삼진이지만 경기에선 인플레이 상태가 유지된다.
삼진을 잡고도 애석하게 1루를 허용하는 바람에 국내 최초의 퍼펙트게임은 날아갔다. 이날 정민철은 28타자를 완벽하게 처리하고도 8회에 나온 단 하나의 오점(낫아웃) 때문에 퍼펙트가 노히트노런으로 바뀌어 버렸다.
대기록을 문턱에서 좌절시키는 복병은 바로 심리적 부담이다. 아무 생각 없이 경기에만 전념하다 누군가 기록을 귀띔해주면 이상하게도 곧바로 기록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송진우는 해태와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8회 2사까지 퍼펙트게임을 하다 풀카운트에서 볼넷을 허용, 기록이 무산되고 나서 다음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 노히트노런 기록까지 깨져 버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점까지 하면서 패전투수가 돼 버렸다.
야구는 어디서 하던 규칙이 다 똑같지만 문화적 차이와 플레이를 하는 스타일은 조금씩 다르다. 필자가 보건대 국내에서 아직 퍼펙트의 대기록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어 보인다.
미국 야구 스타일은 공격적이고 선수들 역시 기록 달성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정당당하게 맞서며 기록을 저지하는 쪽을 선호한다. 하지만 국내 야구는 평생 꼬리표를 다는 희생양이 되는데 민감하다. 팀이든 선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것만큼은 막으려 한다. 예를 들면 대기록 앞에서 기습번트를 시도하거나 볼넷을 얻으려 타석에 바짝 붙어 투수의 실투를 유도한다.
다른 사례지만 기록 앞에서 빚어지는 국내 프로야구의 일면을 우리는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봤다. 박용택(LG)과 홍성흔(롯데)의 치열했던 수위 타자 경쟁은 공교롭게 LG-롯데의 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승부를 가리게 됐다. 근소한 차로 1위 자리에 올라 있는 박용택은 벤치에서 막판 역전을 노리려는 홍성흔을 바라봤다. 문제는 LG 투수들이 기록을 의식, 홍성흔과의 정면 승부를 피해 3타석 연속 볼넷을 내주며 박용택의 타격왕 자리를 지킨 것이다. 만약 메이저리그였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기록의 순간을 보러 수많은 관객이 야구장을 찾았을 것이고 두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진검승부를 펼치지 않았을까. 스포츠가 아름다운 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승부의 묘미와 정정당당함에 있다.
이동수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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