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뒤에 서세요, 아이가 무슨 생각할까 생각하세요

입력 2010-04-29 07:21:08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키우는 '자기 효능감'이란

▲결정권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효능감이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결정권을 빼앗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효능감이다.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음.

#주부 한수빈(34)씨는 딸 민주(7)의 향후 2년간 교육 일정을 다 짜놓았다. 제일 적합한 원어민 영어 과외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직접 영어 학원을 수강하며 교육의 질을 살피기도 했다. 민주는 영어 과외, 인라인 스케이트 학원, 발레 학원, 피아노 학원 등 네 가지 이상의 학원을 다닌다. 요일별로 시간표가 달리 짜여지지만 민주는 오히려 이 시간표를 지키지 못하면 불안해한다.

#이준명(15)군은 학교 성적이 하위권이다.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을 함께 다니지만 정작 학습 의욕은 전혀 없다. 학원 강사로부터 이런 지적을 받고 과외 선생으로부터는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말도 들었지만 이군은 학원과 과외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친구들이 다 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자신도 해야한다는 생각이다.

민주양과 준명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다. 심리학에서 자기 효능감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을 의미한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가 제시한 개념이다.

요즘 자기 효능감을 갖지 못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정해주는 시간표대로 움직이며 결정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정작 자기주도적 학습이 필요한 중고등학생이 된 후 갈등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5월 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부모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어떤 선물을 줄까'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할까'이다. 전문가들은 "아이의 생각 밑바닥을 헤아리고 보듬어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선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마음을 잘 헤아려줘야 할 영'유아기

인간은 좌절을 겪으면 유아적 본능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영아기의 성격 형성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상담 전문가 카운피아닷컴 전종국 원장은 "아기의 울음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울음에 대해 정확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줘야 세상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특히 18개월쯤 되면 아이들과 대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진다. 이때 부모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말로 아이의 마음을 해결하려 드는 것. 아이들은 '속상하다'는 마음의 표현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정부리고 토라진다. 아이는 '속상하다'는 말 대신 투정을 부렸는데 부모가 '버릇없는 아이'로 치부해버리고 방치한다면 아이의 성격은 투정과 짜증이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전 원장은 "영아기는 아이의 마음밭을 만들어주는 시기"라고 정의한다. 그 마음밭이 넓고 비옥해지기 위해선 부모들이 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부모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잘 관찰해야 한다.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의 저자 가트맨 박사는 "부모가 정서적으로 똑똑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 자신의 감정 대응방식을 이해하고 이것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냉철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서술했다.

◆자녀에게 스스로 성취감 느끼도록 하라

엄마가 아이에게 너무 쉽게 답을 주면 아이들의 효능감이 자라날 수 없다. 부모가 주는 정답은 부모 세대의 정답일 뿐이다. 20, 30년 후 아이들의 세대에선 전혀 다른 답이 요구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정답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경주 아트선재미술관 이두희 큐레이터는 미술 교육에 빗대 부모 중심의 교육을 경고하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대로 그림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천편일률적인 기법을 배우고 있다"면서 "기술 중심의 미술 패러다임은 이미 바뀌고 있으며 부모가 원하는 똑같은 방법으로 교육받은 아이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자기 주도적이고 효능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효능감의 바탕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목표를 쪼개어 세분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크고 화려한 목표보다는 아이들이 당장 이룰 수 있는 작고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워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대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평가 목표 대신 학습 목표를 묻는 것이 좋다. '오늘 몇 점 받았어?' '잘했어?'라는 질문에는 은연중에 평가 목표가 깔려 있다. 대신 '실패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는 개념의 학습 목표를 중시해야 한다. '오늘 무엇을 배웠니?'라고 묻는 것이 좋다.

초등학생의 경우 학교 숙제를 엄마가 해주는 것은 금물.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움만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자녀의 허락을 구하고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정도만 도와주는 것이 좋다. '해라'가 아니라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대화법을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관대한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자기 삶의 계획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는 아이 삶을 부모가 계획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세계적 임상 심리학자인 토머스 고든은 '부모 역할 훈련'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아이를 자기 자신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고 지적했다.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저자 가트맨 박사 역시 "감정을 무시한 채 강제로 억압하면서 공부를 강요하면 초등학교, 중학교 저학년까지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유지하기 힘들다"고 적어놓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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