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진천천변 자연부락, 이젠 추억 속으로

입력 2010-04-23 07:29:01

"막상 정리하고 떠나려니 섭섭하네요. 다행히 인근에 집을 구해 떠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17일 주말 오전 화창한 봄 날씨에 대구시 달서구 유천로 57에 위치한 30년생 자목련(紫木蓮)은 곧 사라질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흐드러지게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래전부터 비가 새는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기와지붕엔 곳곳이 천막으로 덮여 있지만 군데군데 누더기처럼 찢어져 있다. 하지만 검은 철대문 사이로 곳곳에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걸 보니 사람이 거처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가족들은 길 건너로 먼저 이사를 하고 아직 짐 정리할 것이 남아 있어 자주 들르고 있다"는 이곳 토박이 서달용(50)씨. 1970년 작은형이 결혼해 분가할 때 지은 이 기와집에서 살아온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고 한다. 집안에 심어진 자목련과 석류, 대추나무, 줄장미도 서씨와 30년 세월을 함께 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유천동 유천교에서 진천천을 따라 형성된 자연부락에는 150여가구가 이웃의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하나 둘 떠났고, 마지막 남아 있던 16가구마저도 진천천 상습 침수지역 하천개발로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됐다는 것. 이사를 한 텅 빈 집들은 대부분 철거되었고 4채밖에 남지 않은 집들도 조만간 모두 헐릴 예정이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동네 사람들과 편안하게 술도 한 잔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들도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어 아쉬워요."

이곳에서 지금껏 살아왔던 주민들은 그리 멀리 이사를 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 달서구 관내나 달성군으로 떠났지만 인근 유천초등학교 옆 컨테이너로 만든 유천동 경로당에는 아직도 10여명의 어르신들이 이사 간 후에도 옛정을 잊지 못해 찾아와 소담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고 한다.

이 일대 자연부락은 주말에도 쉼 없이 굴착기 등 중장비가 굉음을 내며 마을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나가고 있고, 몇 채 남지 않은 집들이 철거되면 머지않아 이곳은 완전히 추억 속으로만 기억되게 된다.

진천천 수해 상습지 개선사업은 유천교에서 진천천 하구까지 2.58km로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 총사업비 158억7천500만원을 투입해 치수안전성구간과 친수문화구간, 생태보존구간으로 나눠 친환경적인 사업으로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글·사진 권오섭시민기자 imnewsmbc1@korea.com

도움: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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