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예쁜 디자인은 없다

입력 2010-04-20 10:57:39

반짝 스타라는 말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스포트라이트가 채 눈에 익기도 전에 떠나가 버린 가수'배우'운동 선수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 부침(浮沈)으로만 보면 지금은 잊힌, 하지만 한때는 각광받았던 우리 사회의 키워드' 이슈'트렌드 또한 이런 반짝 스타들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미 조명 밖으로 사라졌다 해도 그들이 보여준 색, 감흥, 메시지들은 쉽게 변형, 변색되지 않고 사람들 인식의 한쪽에 온전히 머문다. 대개의 경우,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도 "아! 맞아 그 가수 참 대단했어!" "그랬지! 당시엔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어." 하며 그때를 명료하게 되살리고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게 하나 있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무대 밖으로 밀려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의 인식과 마인드에선 반짝 스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이상한 하나, 바로 디자인이다.

"음''' 디자인이라는 건 말이지… 인간의 창의성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형태 또는 조형 등의 그 무엇?"에서부터 "거 예술 아이가! 인자는 마 뭐 하나를 만들어도 디자인이 예뻐야 되는 기라."심지어 "저희 회사는 아직 디자인 찾을 때가 아닙니다. 허리띠를 더 바싹 졸라매야" 까지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은 가끔은 가당치도 않은 찬사를 견뎌내야 하고 때론 백화점의 명품 코너 어디쯤에 가두어 버리려는 뜬금없는 시도들과도 맞서야 한다. 연륜으로 따지자면 원로급 스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불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먼저, 디자인의 사전적 정의는 의도, 계획, 목적 등의 단어에 술어가 보태져 구성되고, 그 어원은 '계획하다, 지시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데지그나레(designare)'에 두고 있다. 단지 '더 예쁘고 더 혹하게 하는 그 어떤 행위' 따위가 아닐 뿐더러 여기에서의 의도와 계획은 이해와 배려에 바탕한 타자(他者)를 위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이 스스로의 내면을 향할 때 디자인의 시선은 타자의 내면을 살핀다. 디자인은 세월과 함께 다양한 삶이 녹아든 현장에서 배양되고 자라나며 디자인과 디자이너는 사람 ' 사회 ' 산업 ' 상품을 가로지르는 문화적 매개체이자 매개자이다. 바우하우스의 틀에서 보든 미국식 소비주의 관점에서 보든 통합과 소통이라는 디자인의 기본 속성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디자이너들이 현장에서 뭔가를 '예쁘게 좀 더 예쁘게' 꾸며주는, 여차하면 뒤로 미루어도 무방한 존재로 인식되는 이유는 뭘까? 물론 일차적인 까닭이야 당사자들의 역량에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디자인계 내부, 특히 대학에 있다.

아직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디자인 대학은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파트너로 기능했고 이후 디자인 대학의 교수진들은 이론과 실무, 심사와 평론, 교육과 정책을 한꺼번에 담당하는 거의 유일한 지식인 그룹이 되었다.

하지만 행복한 디자인 문화는 정부가 주도하고 대학의 권위가 그 판단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 권위가 관(官)의 낙후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문화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오히려 빼어난 조형미와 트렌드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느끼게 될 사회적 속성까지 미리 담아내는 디자인은 대학의 울타리 안이 아니라 현장에서 나올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디자인대학은 단순한 조형 기술자가 아니라 현장의 숨소리와 살 냄새를 사랑하고 거기에서 조형미와 숨은 리듬을 찾아낼 줄 아는 진짜 디자이너를 키워내는 데 좀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인문'사회'역사를 이해하는 눈과 감동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닌 디자이너 육성을 모색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다른 학문들과 더 깊이 있게 사귀어야 하며 특히 사회과학과는 반드시 통섭해야 한다.

디자인의 근간은 크리에이티브의 원천인 휴머니티와 직관성에 있고 디자이너의 궁극적 역할은 조형미와 편의성 증대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가 소통할 수 있는 직관적 아이덴티티(Identity)를 구축하는 데 있다. 더 이상 우리의 디자인 문화가 분절되고 왜곡된 채로 일상과 유리되어 떠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단언컨대, 좋은 디자인은 있을지언정 예쁜 디자인은 없다.

권은태 시나리오 작가·마루커뮤니케이션 대표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