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의 자존심…서울·부산서 체인점 요청도 정중히 거절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청도. 영남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한 청도의 중심지는 예로부터 청도역이다. 청도장이 이곳에 서고 시외버스 터미널도 주변에 있다. 당연히 청도역 주변에는 맛깔스런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다.
전국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청도 추어탕' 식당들도 경쟁적으로 '원조' 간판을 내걸고 오랜 기간 묵묵히 청도역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기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탕에 밥을 말아 훌훌 퍼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던 옛 시절의 애환과 향수를 그리워한다. 맑은 물에서 잡힌 다양한 민물고기를 아끼지 않고 요리해 담백하고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맛을 잊지 못해 요즘도 경남, 대구 등지에서 이곳을 찾는 마니아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이곳 식당들은 예전에는 맑은 시내에서 잡은 미꾸라지만 사용해 추어탕을 만들었지만 자연산 물량이 줄고 중국 등지서 수입산이 들어오면서 자연산 미꾸라지(황동어)와 꺽지, 새끼 메기, 동사리, 빠가사리 등 잡어를 섞은 민물잡어 추어탕을 주메뉴로 내놓는다. 미꾸라지를 비롯한 민물고기들을 잘 다듬고 삶아 채에 뼈를 걸러낸 후 배추 등 각종 채소들을 넣고 끓인 국물과 섞어 다시 푹 끓여서 내는 추어탕의 진한 맛은 입안을 온통 휘젓는다.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말끔히 없애기 위해 초피나무의 열매 껍질을 가루로 낸 제(산초)가루를 탕에 넣고 먹으면 제피 고유의 맛과 향을 내며 시원한 탕과 어우러져 밥 한 공기가 뚝딱이다.
◆명예와 자존심을 고수하는 청도 추어탕
청도역에서 내려 첫 번째 식당인 삼양식당의 주인 김명순(67·여)씨는 청도 추어탕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20여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큰 소쿠리에 담긴 미꾸라지, 메기, 꺽지, 동사리, 청갈래 등 7종의 잡어들의 배를 따서 손질하는 것으로 추어탕 요리를 시작한다. 당일 청도 운문댐에서 잡힌 수십마리의 민물고기들이 곧바로 식당으로 수송돼 싱싱함을 자랑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배를 딴 잡어는 물과 일대일 비율로 섞어 바로 냉동시킨다.
한쪽에서는 배추 등 각종 나물을 끓이는 대형 솥에서 나오는 풋내음으로 코끝이 진동한다. 30여분 동안 끓여진 나물은 국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뻑뻑하다. 다른 큰 솥에는 냉동된 잡어들을 넣고 40여분간 푹 고아서 소쿠리에 담고 잘게 으깬다. 이 과정에서 뼈는 모두 걸러지고 고운 국물에다 끓여진 나물을 섞어 센불로 다시 30분을 끓인다. 또 다른 솥에서는 피라미에다 무, 각종 양념으로 뒤섞인 피라미 조림이 조리되고 있다. 어린 시절 피라미에다 고추, 마늘 등 풍성한 양념과 무를 섞어 끓여 얼큰함이 배인 조림 맛을 잊지 못하는 손님들은 밑반찬용으로 내놓는 피라미 조림을 너무나 반긴다고 김씨는 자랑한다.
탕에 고추와 마늘, 양념장, 제피가루 등을 넣고, 조림과 새콤한 묵은 김치를 반찬 삼아 먹으면 속이 확 풀린다. 제피가루는 잡어의 비린내와 누린내, 채소의 풋냄새를 없애고 음식의 맛과 향을 더해 준다. 텁텁하지 않으면서 걸쭉하고 시원해 해장 속풀이로는 제격이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김씨는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다진 양념장이 추어탕 맛을 좌우한다고 소개했다. 식당 뒤 10여개의 큰 단지에는 메주가 담긴 간장이 가득하다. 간장의 단맛을 내기 위해 메주와 물을 담은 간장독에 숯을 조금 넣어 2년 이상 숙성시킨 뒤 양념장 재료로 사용한다. 민물고기가 자연산인 것은 물론이고 다른 재료들도 국내 최고의 품질만 고집한다. 대구 도매시장을 돌며 청양고추와 의성마늘, 친환경 배추 등을 구입하는 정성을 쏟는다. 민물고기와 농산물 가격이 치솟아 해가 갈수록 수입이 줄어들고 있지만 김씨는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며 물이 좋고 인심이 후한 청도의 명품 음식을 만든다는 명예와 자부심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서울, 부산 등 전국 각지의 단골 고객들이 식당 개업 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하는 조건으로 다른 지역에 체인점을 내라고 제의하지만 김씨는 "우리 식당의 추어탕은 청도의 자존심"이라며 거절한다고 했다.
◆식지 않는 추어탕 열기
대구 중리동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장화수(71)씨는 식당 개업 초기부터 애용하는 단골 손님이다. 장씨는 "한입 먹으면 시원하고 담백하며, 숟가락을 더할수록 목줄기에서 조금씩 추어탕 특유의 칼칼한 맛이 올라오며 온몸으로 퍼진다"며 식당 주인 김씨의 손맛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 그릇을 든든히 비워도 3시간만 지나면 배가 출출할 정도로 소화가 잘 되고 영양이 풍부한 보양식품이어서 사시사철 이곳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일행인 제갈경수(57·대구 본리동)씨도 구수한 국물 맛과 짭쪼름한 조림에 반해 10년 넘게 삼양식당만 고집한다. "다른 지역의 추어탕은 제맛을 느끼기 힘들어 대구에서 마음 먹고 온다"는 제갈씨는 가족 모두가 추어탕 마니아라고 자랑했다.
청도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최희종(56)씨는 "깊고 그윽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민물잡어 추어탕은 미꾸라지 추어탕보다 향이 더 진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며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그는 "신선한 자연산 잡어와 싱싱한 채소, 맛깔스런 양념장으로 청도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청도 추어탕을 지키려는 주인 김씨의 열성이 맛을 더해 준다"고 말했다. 이날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주인 김씨와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등 가족처럼 정을 나눴다. 김씨는 "우리 식당은 한번 오고 나면 대부분 단골 손님이 된다"면서 "적어도 10년은 넘어야 단골로 쳐 준다"고 했다.
주말과 휴일 청도역 주변의 추어탕 식당들은 몰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인근에서 산행을 하거나 관광 온 사람들에게 '청도에 왔으면 추어탕을 먹고 가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질 정도로 추어탕은 서민 대표음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 떠밀리는 차량으로 혼잡하고 식당 밖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학계에서도 영양분이 뛰어난 추어탕을 보양식품으로 적극 추천한다.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하고 칼륨, 나아신 등의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민물잡어 추어탕은 각종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효과도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기름기가 적어 담백한 맛이 돋보이고, 많이 먹어도 소화가 잘 돼 특히 소화기 계통이 불편한 노약자들에게 좋은 영양식이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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