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맛코리'

입력 2010-04-12 10:43:30

선(禪)은 대승불교의 독특한 수행법이다. 화두 또는 공안을 근거로 수행하는 간화선, 묵조선, 염불선 등 여러 방법이 전한다. 선은 '명상'이란 뜻을 지닌 고대 인도어 팔리어(語) 자나(Jhana)의 중국한자 표기음 선나(禪那)에서 나(那)가 생략되고 선(禪)만 남아 생긴 말이라고 한다. 단순한 종교적 수행법이었으나 인도 불교와 중국 도가사상이 결합하면서 선불교라는 독립 종파를 형성해 한국과 일본에 전해졌다.

서양에선 불교라고 하면 거의 선불교를 의미한다. 서양인들은 선을 젠(Zen), 공안을 코안(Koan)이라고 한다. 선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일본인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가 선불교 용어를 일본식 발음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바둑도 고(Go)로 부른다. 현대 바둑의 기틀을 마련한 일본인들이 서양에 바둑을 전하면서 바둑을 뜻하는 한자 기(碁)를 일본식 한자 발음인 '고'로 소개한 탓이다. 이에 따라 바둑 용어는 일본식 표현이 세를 과시하고 있다. 정석(Joseki), 선수(Sente), 패(Ko), 단수(Atari) 등의 표기가 대표적이다.

선불교나 바둑 용어가 일본식 발음으로 서양인들에게 불리는 것은 선점효과로 용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의 낫토, 불가리아의 요구르트와 함께 세계 3대 발효식품인 한국의 김치가 '기무치'가 된 것도 모자라 막걸리까지 일본식 표기가 국제적으로 공인될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선 막걸리의 영문 표기가 업체별로 제멋대로 표기되고 있다. 반면 일본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에 막걸리를 '맛코리'라는 일본 술로 등록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포천 막걸리 상표등록을 먼저 하는 바람에 막걸리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는 소식에 이은 충격이다.

막걸리는 요구르트보다 유산균이 10배나 많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본을 비롯한 국내외에서 날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한 일본인은 전국의 막걸리 양조장을 순회하면서 국내 막걸리 지도까지 제작했다. 그러나 우리는 막걸리 영문 표기조차 통일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나 농림수산식품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심한 게 아니라 무식하다고 봐야 한다. 영문 표기마저 통일하지 않은 채 한식과 전통주의 세계화가 가당키나 한가.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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