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자 황종렬씨가 본 '安의사의 사생관'

입력 2010-03-26 09:48:13

(사형 판결을 받은 후 감옥에 돌아와) '내게 무슨 죄가 있느냐. 내가 무슨 죄를 범했느냐' 천번 만번 생각하다가 문득 크게 깨달은 뒤에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과연 큰 죄인이다. 내가 어질고 약한 한국 인민 된 죄로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침내 의심이 풀려 안심이 되었다.(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 중에서)

"안중근 의사는 '하늘의 뜻'(天命)이라고 믿으면서 죽었습니다. 그렇기에 떳떳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었지요."

가톨릭 신학자인 황종렬(53) 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은 "안 의사를 제대로 알려면 그의 천주교 신앙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안 의사는 독립운동에 나서고 간적을 처단하며 사형당하는 순간까지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의 뜻에 맡겨 행동했다"고 했다.

황 박사는 "안 의사의 사생관(死生觀)은 상선벌악(賞善罰惡·착한 자에겐 상을, 악한 자에겐 벌을 준다)이라는 신앙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더 큰 악을 제거하기 위한 '하느님의 칼'과 같은 역할이었고 자신의 죽음은 평온을 되찾고 하느님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는 안 의사를 '자기 벗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는 성경 말을 실천했고, 자신의 목숨을 민족과 조국에 바치며 선생복종(善生福終·선한 생을 살고 복된 마지막을 맞다)한 신자였다는 것이다. 그만큼 진실한 신자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안 의사가 마지막에 쓴 6통의 유서에 그의 신앙이 잘 나타나 있다고 했다. 어머니와 아내, 두 동생, 사촌동생 안명근, 숙부, 뮈텔 주교, 빌렘 신부에게 보낸 유서에는 종교적인 이야기로 가득했다. '훗날 영원한 복지에서 다시 기쁘게 만나기를 기대한다.'(두 동생에게) '훗날 영원의 전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있으니….'(어머니에게)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이제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머지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에 모이려 하오'(아내에게) '죄인을 잊지 마시고 주님 앞에 기도를 바쳐 주사옵고….'(빌렘 신부에게)

황 박사는 뤼순 감옥 부근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안 의사의 유해를 반드시 찾아야 하겠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약간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안 의사가 묻힌 곳은 하느님의 품인데 굳이 답답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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