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門서 華岳까지](13)운문분맥 남쪽서 본 산과 호칭

입력 2010-03-26 07:11:08

뻗어나온 산줄기 없어 주능선과 산봉들 옆집 담장처럼 조망

재약산 사자봉에서 바라 본 운문분맥. 맨 왼쪽 저 멀리 보이는 절벽은 억산바위, 그 다음 둥그스름한 건 운문산, 맨 오른쪽 솟은 산은 가지산이다. 가지산 앞으로 튀어나온 것은 백운산이며, 그 서편으로 펼쳐진 마을이
재약산 사자봉에서 바라 본 운문분맥. 맨 왼쪽 저 멀리 보이는 절벽은 억산바위, 그 다음 둥그스름한 건 운문산, 맨 오른쪽 솟은 산은 가지산이다. 가지산 앞으로 튀어나온 것은 백운산이며, 그 서편으로 펼쳐진 마을이 '시례'라 통칭되는 밀양 산내면 권역이다. 시례에서는 운문분맥 산들이 마치 뒷집 지붕마냥 훤히 올려다 보인다.
운문서릉 1,108m봉에 서 있는
운문서릉 1,108m봉에 서 있는 '함화산'표석. 청도산악회가 세운 정상석 때문에 이름이 '운문산'으로 굳어져 버렸음을 안타까워하는 글이 그 뒷면에 새겨져 있다.

가지산과 운문분맥 남쪽에서는 주능선 흐름과 그 위에 솟은 산봉들이 옆집 담장이나 지붕처럼 잘 보인다. 뻗어 나온 산줄기가 없다시피 해 마을과 산 몸체가 바로 붙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가장 먼 주능선까지 거리조차 3㎞쯤밖에 안 된다.

산줄기 위를 걸어도 다르지 않다. 운문령서 가지산으로 오르자면 10분 이내에 석남사 계곡이 훤히 모습을 드러낸다. 가지산이 끝나는 아랫재까지는 거기서 3시간30분가량 더 가야하지만 그 시간 내내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도 울산이나 밀양이 있는 남쪽이다.

반면 북쪽 운문사계곡은 깜깜하다. 산줄기들이 하도 길고 높게 발달해 저 멀리 있는 마을은커녕 주능선 바로 아래 계곡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울산과 밀양 쪽에서 가지산과 운문분맥 산줄기를 자기네 것이라고 여기는 이유를 짐작할만하다.

하지만 그 남쪽 지역이라 해서 각 지점에서 보는 산 모습이 모두 같은 건 아니다. 같은 산 아래더라도 어느 기슭에 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되거나, 마을에 따라 부르는 이름마저 달라질 소지가 생기는 소이다.

가지산 경우, 울산 상북·언양 쪽에서 보이는 것은 4분의 1에 해당하는 그 남동쪽 부분뿐이다. 정상에서 석남고개를 거쳐 능동산으로 이어가는 낙동정맥 본맥이 막아서서 그 서편이 안 보이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로써 상북·언양은 고헌산~학대산~가지산~능동산~간월산~신불산으로 이어진 낙동정맥에 의해 둥그렇게 둘러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여건에서 울주 쪽이 붙인 가지산의 본래 이름은 '석남산'(石南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언양현 조가 그렇게 전한다. 석남사라는 절 이름서 따온 명칭이고, '석남'은 쌀바위 남쪽이란 뜻일 테다. 일대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능선 상 지형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신증승람에서는 그러나 '석남산'이라고만 할 뿐, 우리가 통상 명칭으로 쓰는 '가지산'은 들먹이지 않는다. 그때까지는 그런 이름이 쓰이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가지산이란 말은 '언양읍지'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석남산을 일명 가지산이라 하노라고 써 뒀다는 것이다. '상북면지' 등 여러 군데에 나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석남사 홈페이지는 '가지산'이란 이름의 본래 표기는 '까치산'이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걸 이두 식으로 적은 게 가지산이라는 말이다. 문자화 과정서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한자표기가 생긴 것도 그 탓으로 여겨진다. 앞으로 보겠지만 까치는 운문사 창건설화에도 나타나는 이 일대에 의미심장한 동물이다.

울주 석남사의 대척점, 즉 가지산 남서 기슭에 자리한 밀양 산내면에서는 '가지산'은 물론이고 '석남산'이란 명칭조차 거리감이 있다. 거기서는 '실혜산'(實惠山) '시례산'(詩禮山), 혹은 '천화산'(穿火山)이라 불러 왔다 하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있다.

'실혜' '시례'는 운문산~가지산~능동산~재약산~도랫재로 둘러싸인 일대, 즉 '밀양 얼음골'이라 불리는 남양리·삼양리 여섯 자연마을 통칭이다. 산내면 소재지서 20여리 떨어진 별개 지구로, '얼음골사과'를 강조할 때도 특별히 '시례얼음골'이라고 특화한다.

'천화' 또한 일대의 지명으로 사용됐던 고유명사다. 1800년대에 일대의 통칭으로 채택돼 '천화면'이 설정된 적도 있다. 신증승람은 지금의 석남고개를 '천화현'(穿火峴)으로 기록해 뒀다. '산내향토지'에 의하면 천화는 화산 분화구를 뜻한다.

하지만, '가지산'이란 이름에 낯설기로는 밀양보다 분맥 북편 청도 쪽이 더 하다. 그 산의 절반을 가진 지방이면서도 청도 사람들 중엔 '가지산'이라는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혹시 들은 적 있어도 그게 청도와 영 동떨어진 울산 땅에 별도로 있는 줄 여긴다. 지금 가지산으로 통하는 그 산에 운문산 외에 또 다른 이름이 붙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결과다.

이런데도 어쩌다 이 산에 가지산이란 이름이 확고부동하게 붙어 유통되는 것일까?

불교 영향이 컸던 듯하다. 그 종교에서 막대한 위신을 가진 산이 '가지산'이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우선 한자 표기부터가 '석가여래의 지혜'를 암시하기 좋은 '迦智'(가지)로 굳어져 있다. 그런 가지산은 인도에 있고 중국에도 있다. 거기엔 각각 똑 같은 이름의 '보림사'(寶林寺)가 있다. 불교에 매우 중요한 사찰들이다. 그걸 본 따 우리나라 전남 장흥(長興)에도 가지산과 보림사가 생겼다. 지금은 송광사(松廣寺) 말사로 위축됐지만 여전히 국보·보물을 각 3점씩이나 보전하고, 인도·중국 것과 함께 '3보림'으로 일컬어지는 절이다.

장흥 보림사 일대 산이 가지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선종 '가지산문'이 그곳 절에 자리 튼 결과일 테다. 서기 840년의 일이었다. 그 가지산문은 우리 선종불교의 적통이다. 개창조인 '도의(道義)국사'가 중국 선불교 법통인 6조 혜능스님의 증(법)손으로부터 심인을 받은 스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불교 조계종 뿌리는 가지산문이고, 도의국사는 조계종 종조(宗祖)다. '가지산'이란 이름에 따라붙을 위엄이 얼마나 커질지 짐작케 하는 자료다.

많이들 아는 원응(圓應)국사나 일연(一然)국사 또한 그 가지산문 소속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 운문사와 인연 깊다. 원응국사는 서기 1230년 전후 운문사를 세 번째 중창했다. 일연스님은 그 40여년 후인 1277년 주지로 임명돼(72세 때) 4년간 그 절을 지키며 '삼국유사'를 썼다. 특히 일연스님은 영남대 부근 마을 출신이면서도 가지산문 개창조가 세운 설악산 진전사까지 찾아가 머리를 깎았던 분이기도 하다. 가지산이란 이름이 이런 스님들로 인연해 이 땅으로 흘러들고 굳어질 소지가 마련된 셈이라고나 할까.

하나 이곳 가지산은 보림사 가지산이 아니다. 그 이름이 '까치산'에서 온 것으로 보는 석남사 측 판단이 청량하다. 그렇다면 한자까지 '迦智山'이라 맞추려 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영남지도'라는 고지도의 언양현 그림 표기는 '伽智山'이고, 청도산악회서 세운 정상석에는 '加智山'으로 돼 있다.

이렇게 시각과 이름이 엇갈리는 현상은 운문산에서도 나타난다. 그걸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청도 쪽이다. 하지만 그 남쪽 밀양 산내 어르신은 '함화산'이라 했다. 산내향토지는 '함안산' '화암산'이라고도 한다고 기록해 뒀다. '함화'는 含花나 函火, '함안'은 含眼, '화암'은 火岩으로 표기되고 있다.

그런 이름의 연원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와 있다. 산 서편 높은 곳에 자리한 석골사 상운암의 조선 영조 때 주지가 함화스님이고 그 암자의 당시 이름 또한 함화암이어서 '含花山'(함화산)이 됐다는 설명도 그 중 하나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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