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동아리 生死 "취업에 물어봐"

입력 2010-03-25 10:46:19

대학가 소모임 선택기준 취미→취업으로

24일 오전 경북대 도서관 공부방을 선점하기 위해 늘어선 학생들의 행렬. 대학가 스터디가 단기 스터디로 바뀌면서 공부방 잡기도 경쟁이 치열하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24일 오전 경북대 도서관 공부방을 선점하기 위해 늘어선 학생들의 행렬. 대학가 스터디가 단기 스터디로 바뀌면서 공부방 잡기도 경쟁이 치열하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학가 스터디 모임과 동아리가 취업에 맞춰 생성·소멸하고 있다. 스터디 모임은 좁아진 취업 문턱을 넘기 위해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필요에 따라 생성·해체돼 '초단기 스터디' 형태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동아리도 '실속'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취업문이 좁아진 2000년대 이후 이념적 성향을 띠거나 학술적 성격의 모임은 사라지고 '재미' 혹은 '취업'을 목적으로 한 동아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초단기, 합종연횡 스터디그룹

23일 오후 경북대 도서관 알림난에는 '공무원 한국사 모의고사 스터디 모집' '2010년 1회차 도시계획기사 실기 같이 공부하실 분' '컬러리스트 기사 실기 스터디' 등 스터디 회원을 구하는 쪽지로 가득 찼다.

이들 모임은 시험이 있을 때까지만 함께 공부하는 단기 과정이다. 이 같은 초단기 스터디의 경우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씩 지속된다. 단기 스터디에는 학문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 특징. 특정 기업 면접 스터디는 물론 매달 한 번씩 있는 토익 시험 스터디도 그 중 하나다. 전공 과목을 위한 스터디도 적잖다.

22일 오후 계명대 경영대학 지하 공부방에서 만난 선혜경(21·여·회계학과)씨 등 3명은 "2학년 때 배워야 할 중급회계 과목을 위해 스터디를 꾸렸다"고 했다. 전문계 고교 출신자들이 회계 분야에 밝고, 인문계 고교 출신자들이 영어에 강하다는 점을 이용한 단기 스터디다.

대학가 스터디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공부방 구하기 경쟁이 치열하다. 이를 반영하듯 24일 오전 7시 30분 경북대 도서관 신관 1층에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70여명의 학생들이 도서관학생위원회를 향해 줄을 선 것. 맨 앞줄에 선 학생에게 물었더니 "오전 4시에 나왔다"고 했다. 이 같은 현상은 도서관학생위원회가 각층마다 1, 2개씩 있는 공부방 이용자 접수를 선착순으로 받으면서 생긴 것이다.

26일까지 신청을 받을 예정이었지만 24일 오전에 접수가 마감됐다. 도서관학생위원회 윤성인(26·생명공학부) 위원장은 "원하는 시간대에 공부방을 선점하려면 일찍 나오는 수밖에 없다"며 "매달 한 번씩 공부방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1학기 공부방 접수를 마친 계명대 경영대학의 경우 40개 스터디 중 23개가 토익 등 영어관련 스터디였고, 전공과 무관한 스터디는 봉사활동, 성경 읽기, 컴퓨터 활용 등 3개에 불과했다.

◆동아리는 '재미'와 '도움'을 찾아서

본지가 경북대·영남대·계명대 등 대구권 3개 대학 동아리 구성을 분석한 결과 2000년을 전후해 신생 동아리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현재 74개의 동아리가 있는 경북대의 경우 IMF외환위기 이후인 1998년부터 24개의 동아리가 새로 생겼다. 오렌지파이터스(미식축구) 등 체육 부문 6개, 경원회(원불교) 등 종교 부문 4개, 넴(만화) 등 문예 부문 6개, 포애드(광고) 등 학술·교양 부문 6개, 틈세(무료 과외) 등 사회참여 부문 2개로 다양한 형태로 모였다.

이 중 터프시커리(춤), 멜크스(마술), 돌구름(발명특허) 등의 동아리는 이전 시대에는 없던 새로운 분야다. 총동아리연합회 부회장 김꽃샘(23·여·미술학과)씨는 "동아리 모집을 하면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거나 흥미를 끄는 곳에 학생들이 고정적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95개의 동아리가 있는 영남대도 사정은 비슷했다. 1997년 이후에 형성된 동아리 중 Max & Zenith(춤), 벤처캐리어즈(벤처)는 IMF 사태 이후 생긴 동아리다. 계명대에서도 BEAT(레크리에이션과 춤), 불카누스(록그룹), 그래픽스(컴퓨터) 등이 새로 등장했다.

◆학술 동아리의 몰락

계명대의 경우 2006년 이후 사라진 동아리만 15개로 나타났다. 이들 동아리는 신입부원 모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계명대의 경우 부원이 30명 밑이면 퇴출된다. 시·문학 토론을 주활동으로 삼았던 한비(1986년 탄생)가 2006년 문을 닫았고, 여론조사를 주요활동으로 했던 인연반은 2008년 자취를 감췄다.

학술 부문 동아리의 몰락은 경북대도 마찬가지다. 1996년 동아리연합회에 등록돼 있었지만 2010년 사라진 동아리는 모두 20개. 이 중 절반이 학술·사회참여형 동아리다. 복현문우회(시·문학), 민속문화연구회(탈춤), 복현율방(국악), 사회복지시설연구회 등이 2000년대 이후 사라진 대표적 동아리들이다.

1997년 이후 생겼다 금세 사라진 동아리들도 학술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한역사연구회, 동상동몽, 어깨동무 등은 역사, 시사토론을 정체성으로 내세운 학술 동아리였다. 동아리의 평균수명이 대체로 20년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단명한 셈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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