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엮음/ 마음산책 펴냄/ 7천원
꽃다운 처녀의 순결을 짓밟고도, 젊은 대학생의 목숨을 빼앗고도 뻔뻔했던 야만의 80년대, 시인을 꿈꾸던 젊은이들은 시의 무력함에 몸을 떨며 세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 뜨거운 눈물로 사람을 사랑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선배들이 변명처럼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그렇게 시는 꿈꾸는 이들의 희망이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어느 날, 순간과 찰나만이 미덕이 된 오늘이 오고 시는 아직도 세상에 맞서지 못하고 있다고 아니 오히려 부끄러운 연민으로 가득하다고 그들은 믿는다. 시가 희망이 되지 못한 세상, 문학이 구원이지 못한 세상, 예술이 따스한 봄날의 한 줌 햇살이지 못한 세상은 불행하다. 한때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념에 지치거나 권력에 물들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시를 잊고 세상에 젖는다. 이렇게 적당히 타협하고 변명하고 열정에 식어가는 우리들에게 시인 김용택은 칼날처럼 충고한다.
"시대적인 사명을 다한 식은 말들을 붙잡고 더 이상 사정하지 말라, 과녁을 놓인 갈망은 허탈하고 미련은 스스로의 입지를 좁혀 초라하게 한다, 나는 아직도 젖을 물고 징징거리는 문학적 가난이 싫다. 바람이 온몸을 뚫고 지나가게 하라, 철없는 고집과 미숙은 부패의 온상이 된다. 성숙은 타락이 아니다."
시인 김용택은 사람과 사랑의 문제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람에게서 절망하고 사랑이 변했노라고 소리칠 때, 그는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아야 하노라고 말한다. 그의 시는 그래서 늘 넘치거나 부족함 없이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 왔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정록 시인의 이라는 시를 통해서 자신으로 하여금 연시(戀詩)를 쓰게 한 아내와의 만남을 떠올린다. 단 1초도 쉬지 않는 자본의 시대에 시로써 사랑을 얻고자 하는 이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지만 그 사랑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해서 김용택 시인의 눈매는 늘 선하고 그의 웃음은 늘 환하다.
『시가 내게로 왔다 3』은 내가 사랑하는 젊은 시라는 부제처럼 젊은 시인들의 시를 엮은 것이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너무나 쉽게 말해왔다는 시인의 반성처럼 우리는 때로 젊음의 당돌함에 부당한 거부감을 가져왔다. 우리 역시 그 젊음이라는 터널을 지나왔으면서 어느 순간 추억에 사로잡혀 보수가 되고 낡고 고리타분한 도덕에 사로잡혀 그 젊음을 낯설어 한다. 해서 젊은 시절의 분노는 철없음이 되고 살아남은 뻔뻔함은 오히려 타협과 묵인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김용택은 전 세대에 부채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더욱 당당한 젊은 시들을 엮으면서 자유를 느꼈다고 말한다. 그것은 젊은 시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결코 시대적이지 않다거나 순간적인 쾌락에 머물지 않음을 말한다. 이 시들을 읽는 내내 봄비가 내렸다. 뼈를 파고드는 한기에도 새싹을 키우는 봄비는 그래서 더욱 서럽고 눈물이 난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결코 아니라고 해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있기에 사람은 희망이다. 시가 있는 한, 아니 그 시를 붙들고 있는 김용택 같은 시인이 있는 한, 봄비에 봄은 젖는다.
여행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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