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이 한입 덥석 소백산을 후루룩
'1능이, 2표고, 3송이'라고 할 정도로 버섯 중의 버섯으로 손꼽는 능이는 맛과 향이 뛰어나 향이버섯이라고도 불린다. 심산유곡에서 자라 신비한 효능을 지닌 능이는 짐승들의 상처를 낫게 해 주는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구렁이가 상처를 입으면 능이버섯 그늘을 찾아 가 똬리를 틀고 있는다는 것. 이 때문에 능이버섯이 많이 돋아난 곳에서는 뱀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능이는 딸 때 먹음직스러운 황갈색을 띠지만 따다 두면 금세 검은색으로 바뀐다. 하지만 건조, 염장, 냉동 등 어떤 방식으로 보관해도 독특한 향과 감칠맛은 변하지 않는다. 가을철 잠시 동안만 능이를 딸 수 있으나 보관성이 좋아 요리는 사시사철 해먹을 수 있다.
◆채소육수 능이칼국수 외국인도 '원더풀'
능이칼국수를 간판 메뉴로 전국에 소문난 집이 영주시 풍기읍 내 영주 소백산능이버섯 칼국수집(풍기읍 교촌1리 45의3)이다. 이 집은 감자와 양배추, 양파 등 갖은 채소와 함께 능이를 푹 고아 칼국수를 말아내는 육수가 기막히다. 보통 칼국수 육수가 멸치와 소고기, 뼈 등을 고아내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채소와 능이로 어떻게 구수한 맛을 내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능이의 감칠맛은 소고기 육수 맛에 버금가기에 이집 주인 시원(56)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하다. 면을 만드는 방법도 특이하다. 콩가루와 능이가루를 밀가루와 섞고 난 다음 능이육수로 반죽을 한다. 일반 밀가루 반죽과는 찰기부터 다르다.
안반 위에 반죽을 펴서 홍두깨로 밀어낸다. 넓게 편 밀가루판을 척척 접어 넓적넓적하게 국수사리를 썰어내는 모습이 봄비 온 뒤 논갈이하듯 시원시원하다. 끓는 채소육수엔 면부터 넣는다. 이후 애호박이 살짝 익을 때쯤 능이를 부추와 함께 넣은 다음 다시 불기운을 높여 손님상에 낸다.
함께 나오는 반찬은 감자전과 능이동동주, 능이두부, 매실장아찌, 부추생절이. 호두졸임, 능이묵. 모든 반찬에 부인 정연화(44)씨의 손맛이 담겨 하나같이 깔끔하다. 자연산 버섯인 능이의 농농한 맛을 상큼하게 다듬어 주는 '바다버섯'이라는 게 있다. 바로 멍게와 성게다. 마치 바닷속 바위에 매달린 버섯 같다고 해 그렇게 부른다. 능이와 멍게는 음식궁합도 찰떡이라고 한다. 외국인들도 원더풀을 연발한다.
"한국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하잖아요. 밥만 제대로 먹어도 건강해집니다." 집주인의 음식 이야기는 한번쯤 귀 기울여볼 만하다. 칼국수와 함께 내는 밥도 사철 다르다. 봄에는 날씨가 습하니 팥밥을 낸다. 여름에는 더우니 속을 시원하게 하는 보리밥, 가을엔 풍요로운 콩밥, 겨울엔 추우니까 속을 덥힐 수 있는 조밥을 낸다.
이처럼 정성을 다하니 전국에서 단골손님들이 찾아 온다. 김재수 농촌진흥청장, 장윤석 국회의원, 김주영 영주시장, 김인환 영주시의회 의장, 안영모 세영주택 대표, 현각스님 등 유명 인사들이 이 집 능이칼국수를 맛보고 기념사인을 하고 갔다. 인근 안동, 예천 등은 물론 서울, 경기, 강원, 충청 등 손님의 80%가 타지 사람들이다. '손님은 왕처럼, 주인은 종처럼'이라는 슬로건도 이색적이다.
◆능이는 한식 세계화에 걸맞은 음식 소재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주고 암세포 증식을 억제시키는 성분 등은 일반 버섯류의 효능과 같다. 능이는 특히 체내에서 지방이 형성되는 것을 막고 열에 강하다. 몸속에 정체돼 있는 독기운과 노폐물, 콜레스테롤을 체외로 배출시켜 피를 깨끗하게 해 준다고 알려져 있다. 비만과 암,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에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능이는 식품이기 이전에 천연 약품이다. 민간에서는 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체증을 내리는 데도 쓰였다. 송이가 남성스럽게 생겼다면 능이의 거무튀튀하고 펑퍼짐한 갓은 여성스러움 그대로다.
옛날 사찰에서는 송이가 흉하게 생겼다고 해서 능이를 더 값지게 쳤다. 한동안 전량 일본에서 수입하면서 금값으로 치솟은 송이에 비해 능이는 10분의 1 정도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능이는 한반도 전역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깊은 산속이 아니면 좀처럼 볼 수가 없다. 큰 것은 갓이 세숫대야만한 것도 있다. ㎏당 2만~3만원씩에 거래되는 능이는 영주를 비롯해 봉화와 청송 영양, 문경, 김천에 이르는 태백·소백산맥 줄기에서 난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
"한동안 알콜성 지방간으로 고생했지요. 그런데 능이칼국수집을 연 뒤로 자연스럽게 나았어요." 50대 중반이지만 시원씨의 얼굴 모습은 40대다. 주름 없이 매끈한 피부에 윤기가 흐른다.
이 집에서 가장 진한 능이맛을 보려면 능이전을 시키면 된다. 밀가루 대신 칡 전분을 이용해 부쳐 낸 능이전은 능이 특유의 향긋한 맛을 내고 피자처럼 부드럽다. 입안에 착 달라붙는 것이 메뉴판에 써놓은 명품전이라는 이름에 걸맞다. 한식 세계화의 이색 소재로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성급하게 음식을 홍보하려 들기보다 좋은 음식을 정성껏 만들면 장사는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시원씨는 한때 음식보다 능이 효능을 자랑하는 데 힘을 쏟다가 '주인인 내가 열심히만 하면 손님은 저절로 찾아온다'는 쉬운 진리를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프랜차이즈에 기막힌 다양한 능이 요리
사찰음식에선 능이를 두고 하늘이 내린 맛이라고도 한다. 어떤 재료와 섞여도 조화를 이뤄 버섯 특유의 깊은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다. 시원씨는 다양한 능이버섯 음식을 개발해두고 있다. 능이칼국수 외에 소고기와 애호박 등으로 만든 능이버섯 전골과 능이볶음밥, 능이육회, 능이전, 능이묵, 능이묵밥, 능이수육, 능이파전, 능이국밥, 능이시원(냉)면, 능이두부, 능이동동주 등은 이미 메뉴판에 올려 놨다. 향긋한 버섯향이 배인 능이돌솥밥,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능이떡국, 소고기와 어울린 능이육회비빔밥,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능이백숙 등은 아직 미개봉된 개발 단계의 음식이다. 시원씨의 끊임없는 능이음식 개발은 자연스럽게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전국에서 체인점 개설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능이 요리 방법 정도를 가르쳐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능이요리 비법을 전수해 준 스님 한분이 좀처럼 허락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능이는 일년 내내 보관이 가능하다. 일반 버섯과 달리 능이는 맛과 향, 영양소가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사찰과 산촌마을에서는 능이를 염장해 연중 보관했다. 가을철 따낸 능이를 두고두고 음식 재료로 쓰기 위해서였다. 소금 한켜 능이 한켜씩 항아리에다 켜켜이 쌓아 두면 버섯물이 저절로 생겨나 능이가 잠기는 염장능이는 김치처럼 그 자체로 발효돼 맛과 향이 갈수록 진해진다. 까만 능이간장은 부산물로 생성된다.
"능이 효능 체험장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능이밥을 지어 보고 능이요리를 배워가고 두부도 만들고 떡도 만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영주 소백산 능이칼국수는 풍기가 아니면 못 먹는 향토 전통음식 수준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영주 특산 음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054)638-2662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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