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족의 연대기/야사르 케말 지음/오은경 옮김/실천 문학사 펴냄
'바람부족 연대기'(원제 빈보아 신화)는 20세기 터키라는 공간을 무대로, 정착할 수도 정착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투르크멘 유목민들의 이야기다. 터키는 오랜 세월 동양과 서양,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이 소설은 전통과 변화가 충돌한 시기를 배경으로 변할 수도, 변하지 않을 수도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19세기에 들면서 터키 정부는 근대화정책으로 유목민들의 정착을 강요한다. 투르크멘 유목민들은 자신의 역사이자 전통인 동시에 삶의 방식인 '유목'을 지키기 위해 국가 권력에 투항하거나 또한 저항한다. 정부와의 싸움은 갈수록 격화되고 대부분의 유목민들은 정착을 택한다. 그러나 카라출루족은 정착을 거부하고 1950년대까지 유목생활을 계속한다.
카라출루족은 겨울을 지낼 수 있는 땅(터전)을 달라고 하늘과 별과 바람에 기도한다. 그들은 겨울을 지낼 땅을 찾아 헤맨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땅에는 이미 국가 권력의 '인증'을 받은 주인이 있다. 국가 혹은 근대성을 상징하는 이스멧 장군과 헌병대, 파출소 상병들, 지주들은 그런 유목민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돈을 요구하는 그들의 모습은 '근대화' 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나와바리'를 주장하는 폭력배의 얼굴과 별반 차이가 없다.
카라출루족은 부족의 미인 제렌을 지주의 아들 옥타이에게 시집 보내고 땅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부족장 쉴레이만 카흐야는 "함께 죽자. 여자 아이를 죽여놓고 그제야 죽거나 하지는 말자"며 만류한다.
소설은 정착민과 국가 권력의 파시즘적 폭력 속에서, 소유만이 권력이 되는 문명 세계 속에서, 오직 생존만을 원했던 유목민들의 삶과 투쟁을 그리고 있다. 땅 한 평은커녕 비석이나 무덤조차 만들지 않는 유목민의 삶, 하늘과 별과 바람과 신화 속 인물들과 교감하는 유목민들의 소통 방식은 국가라는 새 질서 앞에 파괴된다.
소설은 국가의 영토화 작업 속에 유목민 부족이 종말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지은이는 '유목적 주체의 탄생, 절대적 탈영토화, 제도 권력이 아닌 주체적 결단에 의한 탈주의 삶'을 예고한다.
줄거리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시적인 문체는 장편소설을 읽는 재미인 동시에 어려움이다.
'호라산에서 왔도다. 우리 어깨 위 빛나는 인장들, 늑대무리처럼 이 세상 서쪽, 동쪽으로 가득 흩어졌도다. 붉은 홍옥 같은 눈동자, 키가 커다란 말을 타고 우리는 신디 강으로, 나일강으로 달렸도다. 마을을 만들고 성곽을 세우고, 도시를 사고, 나라를 세웠도다. 하란 평원, 메소포타미아 평원, 아라비아 사막, 아나톨리아, 카프카스 산, 넓은 러시아 스텝 지역에 만 아니 십만 개나 되는 검은 텐트를 치고 독수리처럼 내려앉았도다.'
웅장하고 바람부는 초원의 문체이지만, 무슨 말인지 몰라, 책장을 넘기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지은이 야사르 케말은 터키 근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편소설 '메메드' 단편소설선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등을 펴낸 바 있다. '바람부족 연대기'는 구술적 전통에 근거해 근대적 삶의 첨예한 문제들을 형상화해 프랑스비평가협회로부터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464쪽, 1만3천900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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