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기능 다 빼가면, 지방은 어떡하나!

입력 2010-03-03 10:38:52

삼성, LG등 대기업 연구개발 시설 수도권 배치 가속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 연구개발(R&D) 기능의 수도권 배치에 속도를 내면서 구미 등 지방의 R&D 기능을 마구 흡수, 지방의 R&D 공동화(空洞化)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이들 대기업은 전국에 분산된 R&D 기능을 한곳에 모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R&D 연구소를 잇따라 수도권에 짓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R&D 기능의 수도권 집중은 향후 지방의 생산시설 연쇄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데다 대기업의 새로운 사업 진출시 투자 고려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과 수원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경기도는 지난달 22일 경기도 수원사업장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용서 수원시장,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이 수원에 있는 삼성디지털시티에 제3연구소를 건립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경기도는 삼성의 연구소 건립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대신 삼성전자는 2015년까지 연구인력을 추가로 1만명 고용하기로 했다. 총사업비 8천억원이 투입, 이르면 올 상반기에 착공해 2013년 완공될 이 연구소는 지상 25층, 연면적 29만7천㎡ 규모로 단일 연구소 건물로는 국내 최대다. 1만여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는 이곳은 수원사업장 내에 있는 2개의 기존 연구소 연구인력과 함께 휴대전화, 반도체, 가전 등 삼성전자 7개 사업분야의 신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다. 삼성이 브레인 역할을 하는 수원을 더욱 살찌워 기업 R&D 핵심 허브로 삼는 바람에 지방에 분산된 R&D 기능이 모조리 흡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삼성의 새 수원연구소 건립에 따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의 연구인력 수백명이 지난해 상반기부터 대거 수원행 열차를 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007년 3월 구미공장에 건립하려다 착공 5개월 만에 공사가 중단된 채 뼈대만 앙상한 모바일 구미기술센터의 경우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실정. 당초 구미기술센터는 휴대전화 연구 및 개발을 위해 총사업비 2천900억원을 들여 지하 4층·지상 20층, 연면적 12만5천400㎡ 규모로 신축할 예정이었으며, 당시 2천명이던 구미사업장의 연구인력을 5천명으로 늘리는 등 구미를 삼성의 모바일 기술개발 허브로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도권으로의 R&D 기능 확충에 따라 이 같은 지역의 꿈도 물거품이 되게 됐다.

LG전자는 지난해 3월 서울 서초동 R&D 캠퍼스를 개관하는 등 수도권 지역에 그룹 핵심 R&D 벨트 조성에 나섰다. 이에 따라 지난해 상반기부터 구미사업장을 비롯해 지방에 분산돼 있는 R&D 인력들을 대거 수도권으로 몽땅 재배치했다. 구미사업장의 경우 600여명의 R&D 연구원들이 서울을 비롯해 평택과 파주사업장 등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왜 수도권인가?

대경창투 신장철 대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삼성은 수원을 중심으로 인근 화성(동탄)과 충남 아산(탕정)을 잇는 수도권 벨트를 핵심 R&D 허브로 구축하고 있으며, LG는 서울 서초동을 중심으로 평택과 파주를 아우르는 핵심라인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들의 눈에 더 이상 대구경북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인 삼성과 LG가 지역을 외면한 채 있던 시설과 인력을 수도권으로 빼가는 이유는 뭘까?

박인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은 한마디로 '사람'이라고 했다. "투자유치를 위해 기업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지방에서는 A급 인재 수급이 힘들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30년 전만 해도 경북대 등에서 인재 수급이 원활했는데 지금은 지역 대학의 위상이 많이 추락한 것이 이유겠지요."

박 청장이 전한 일화 하나. "대덕연구단지에서 근무할 때인 2006년 대전에 있는 LG화학연구원장과 만난 적이 있는데, 박사급 인력을 잡아놓기가 가장 힘든 일이라고 고충을 털어놓더군요. 1년만 대전에 근무하면 전부 서울로 가려고 줄을 선다고 했어요. 서울에 자리가 없으면 대부분 사표를 써요. 대전도 이런데 기업환경이 더 힘든 대구경북은 말할 필요가 없지요."

실제로 삼성과 LG는 구미사업장 R&D 인력의 축소 이유에 대해 "지방에선 우수 연구개발인력을 확보하기 힘들고, 수도권 출신 인력들은 정주여건이 열악한 지방에 근무하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지자체는 교육, 문화 등 정주여건 개선에 노력하고 대학들은 인재 양성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고 짚었다.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 포스텍, 경북대 등 지역 대학의 연구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우수인재를 지방으로 끌어오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역에서 인력 충원에 문제없게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인철 청장은 "지난해 말 일본의 유수한 철강기업인 동일본제철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공장 내부에 유치원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더니 임원 한 사람이 포스코에는 초·중·고교까지 있지 않느냐며 부러워했다"며 "우리도 우수 인재들이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 여가시설 등의 정주여건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배 구미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연구인력이 올 수 있는 여건은 도외시한 채 대기업은 왜 수도권에만 투자하고, 지방에서 인력을 빼 가느냐? 등의 원망은 말이 안 된다"며 "앞으로 생산공장 이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기업 하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미·이창희기자 lch888@msnet.co.kr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