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몸 움직이면 삶이 풍요로워져요"
주변을 살펴보면 많지는 않지만 슬로라이프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박홍규(58) 영남대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박 교수의 삶은 슬로라이프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웬만하면 갖고 있는 휴대전화가 없고 운전면허증은 아예 딸 생각도 하지 않아 자동차도 없다. 어지간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간혹 멀리 갈 일이 있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먹을거리는 텃밭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조달한다. 빠른 삶에 젖어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답답해 보일 정도로 느린 삶이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위해 박 교수와 연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집과 연구실에 있지 않으면 딱히 연락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메모를 남기고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날마다 마감 시간에 쫓겨 사는 기자에게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메모를 남기고 하루를 기다린 뒤 박 교수와 연락이 닿았다.
"저는 불편하지 않는데 남들이 불편하다고 해서 가끔 미안하기도 합니다. 하루 이틀 기다릴 줄 아는 삶이 바로 슬로라이프입니다.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박 교수의 생활은 자전거만 있으면 문제가 없을 만큼 단순하고 소박하다. 가끔 외부 강연을 다니는 것을 제외하면 주로 집과 연구실에 있다. 집에 있을 때는 한두 시간씩 텃밭을 가꾼다. 그에게 자가용은 이기적인 물건이다.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삶인데 자가용은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연을 위해 서울로 갈 때도 그는 KTX 대신 느린 무궁화호를 이용한다. KTX가 다니기 전에도 새마을호는 타지 않았다. "조금만 서두르면 무궁화호를 타더라도 충분히 약속시간에 맞춰갈 수 있습니다. KTX로 2시간도 안 걸려 서울에 가는 것보다 4시간 동안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 게 더 여유롭고 얻는 것도 많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보통이 아닙니다."
조금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면 더 풍요로워진다는 박 교수는 1999년 도심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경산시 압량면 당음리)로 들어오면서 진정한 슬로라이프를 체험하게 됐다고 했다. 집 근처에 있는 2천㎡(600여평)의 텃밭에서는 야채만 40종 넘게 재배된다. 농약도 치지 않고 비료도 뿌리지 않는다. 박 교수의 말을 빌자면 게으른 농법이다. 덕분에 벌레가 먹고 생산량은 적지만 자급자족하고 이웃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 정도는 생산된다고 한다. 여기서 난 농산물로 그는 도시락을 싸 다닌다.
박 교수는 오래 살기 위해 전원생활을 하거나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촌놈은 촌놈스럽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살 뿐이라며, 시골을 마치 별장처럼 생각하는 일부 도시 사람들의 낭만적인 생각을 거부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시골 생활은 불편함이 많다고 했다. "작은 물건 하나 고장 나도 사람을 부르거나 시내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생활비도 많이 듭니다. 특히 방범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설 연휴 집을 비운 사이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마땅히 가져갈 귀중품이 없어 무엇이 없어졌는지 살펴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박 교수는 죽을 때까지 시골에서 살 것이라고 한다. "개를 데리고 산책할 수 있고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닭을 키우고 농사 짓는 기쁨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이런 즐거움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요."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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