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젊음과 나이듦 사이

입력 2010-02-25 08:41:15

연초록의 잎사귀가 초록을 띨 즈음이면 잎은 왕성한 생산을 하게 된다. 그 후 줄어드는 햇살로 생산을 담당하던 초록을 파괴하고 새로운 색을 드러내며 아주 잠깐, 화려해진다. 곧이어 잎은 추락하지만 다시 태어날 생명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생산, 에너지, 그리고 꿈. 초록이라는 단어와 연상되는 의미는 중년의 나이와는 좀체 상관이 없을 듯했다. 그럼에도 경력 초기에 있는 여성과학 기술인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지원된 '그린 리더십코스'라는 과정에 참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풋풋한 젊은이들 속에서 카멜레온처럼 신분을 위장한 채 코스를 마치려던 애초의 계획은 자기 소개를 해야 할 첫 순서에서부터 산산조각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것 같은 '저 나이에 왜?' 라는 물음표가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10년 후의 비전을 한 사람씩 앞에 나와 발표하란다. 지금과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은 그 때의 모습에 비전을 가져 보라니. 훌륭한 교수, 전공과 연계한 박물관, 취미를 살린 수련장 등, 앞서 발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이제는 그곳에서 무엇을 얻어 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서 어떻게 생존을 하느냐가 더 큰 문제였다.

과정은 시간이 감에 따라 자신을 더 많이 드러내고 망가져야 했다. 그러던 중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때론 잔잔한 감동으로 때론 지난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눈물겨웠다. 앞이 안 보이는 그들의 불안감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조금씩 나는 먼저 가 본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나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저도 나중에 선생님 같은 모습이었으면 해요.'

마지막 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돌아가며 서로에 대해 칭찬하는 말을 적은 엽서 속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100% 과찬이었지만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고 싶어할 최고의 찬사가 아니었을까. 젊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잇값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이는 그냥 먹지만 연륜은 절로 쌓이는 게 아니라는 것. 나잇값을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것.

가을이 되면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드는 나뭇잎. 노란색도 운치가 있지만 단풍은 역시 붉은색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카로틴과 잔토필 성분의 노란색은 초록이 파괴된 후 잎 속에 감추어져 있던 색이 그냥 드러나는 것이지만 안토시아닌인 붉은색은 쌓인 양분으로부터 새로이 합성을 해내는 색이다. 붉은색이 더 가치로울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인생의 가을도 새로운 색을 창조하는 과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단히 무언가를 배우고 익혀 그것으로 어느 날 빛을 발하는.

백옥경 경북도립구미도서관 느티나무독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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