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로 10년째 사경 정진 김영권 거사
불자 김영권 거사(83)는 사경(불경 필사)을 통해 마음을 닦고,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을 찾는 중이다. 오랜 세월 붓글씨와 문인화를 해온 그는 최근 법화경과 화엄경을 한글 붓글씨로 써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기증했다.
붓으로 법화경 13만200자를 쓰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글씨를 쓴 종이 장수가 281장(70×140cm)이다. 한글 화엄경 108만5천12자를 4천880장(35×58cm)에 필사하는 데는 6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렇게 쓴 화엄경을 책으로 묶자 80권이 됐다. 7년 6개월 동안 매일 짧게는 5시간, 길게는 10시간씩 정진한 결과다.
김영권 거사는 1928년 경북 영천 은해사 인근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은해사 스님이었기에 그는 은해사 오산불교학교를 다녔다. 중등 정규과정에 일주일에 2시간씩 불교를 공부하는 불교 학교였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오산항일운동으로 무기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6'25전쟁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고, 40년 초등학교 평교사로 퇴임하는 날까지 정의와 배치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6.25 참전 국가유공자이며, 당시 문교부 장관상 2회,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받았다. 법화경과 화엄경 사경뿐만 아니라 사명대사시, 문인화 작품 등 100점을 그리기도 했다.
붓글씨 솜씨야 어린 시절부터 뛰어났지만 사경이란 것이 붓글씨 솜씨만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에게 불교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었다.
"스님의 아들로 태어나고도 스님의 아들임을 잊고 살았습니다. 부처님의 음덕을 입어 사람답게 살았음에도 그 감사함을 몰랐습니다. 바쁘게 사느라 그것이 큰 죄인 줄을 몰랐습니다. 승적을 가졌지만 민간으로 살아왔기에 스님들을 대할 낯이 없고, 부처님의 제자이면서도 제자 노릇을 못한 것이 천추의 한입니다. 불경 필사를 통해 저 스스로 공부도 하고, 불자들이 어려워하는 화엄경과 법화경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 제자된 자의 도리를 조금이라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경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운영해오던 서예학원을 접었다. 2000년 1월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부처님께 기도한 뒤 2시간 붓글씨를 쓰고 아침 식사를 했다. 식사 시간을 빼면 거의 종일 사경에 매달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안의 망상과 갈등, 업을 씻어내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갔다. 노구를 이끌고 시작한 불경필사이지만 단 한번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과 겨울이 일곱 번 넘게 오고가는 동안 그는 모든 '아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김영권 거사는 길을 걸으면서도 불경을 외운다. 신심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가까운 곳에서 보시의 마음을 잊지 않고, 내 안의 부처를 찾아 수행하는 것이 곧 신심이다. 그는 집 앞에 '불자의 집'이라는 표식을 붙여놓았고, 집안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기도부터 올린다. 법화경과 화엄경뿐만 아니라 다라니경, 금강경, 반야심경 등 여러 불경을 한글과 한문으로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나는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불경을 외우고 쓰는 일, 기도하고 보시하는 일은 내 안의 부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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