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서도 1시간 이상 견뎌 화재진압·인명탐색 척척
대구에는 유독 화재로 인한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그중 2003년 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는 씻을 수 없는 대구의 슬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소방관들은 한치 앞을 볼 수 없게 만든 연기와 유독가스로 인해 화재 현장에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다.
소방관도 사람이기에 공포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자욱한 연기를 뚫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속으로 무작정 뛰어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터. 그래서 많은 선진국은 가장 안전하고도 불을 신속하게 끌 수 있는 방법을 찾기에 골몰해 왔다. 과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은 로봇이었다. 로봇에게 소방보조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소방보조로봇은 인간이 들어가기에 위험한 화재 현장에 먼저 들어가 현장의 온도와 일산화탄소, LPG 등의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고 현장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불을 진화한다. 갑작스런 폭발이나 건물 붕괴 등의 응급상황이 닥쳐도 소방관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다. 물론 로봇에겐 미안한 생각이다.
대구 달서구 호림동 대구기계부품연구원에 자리 잡은 디알비필드로봇㈜ (대표이사 송영환)이 개발한 화재진압 로봇 '파이로(FIRO)-F'는 소방관이 진입하기 어려운 지하상가, 지하철 역사와 폭발의 위험성이 있는 화학회사, 정유회사 등의 화재 현장에 맨 먼저 투입되는 로봇이다. 인명 탐색 및 화재 진압을 목표로 소방관은 물론 시민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띠고 세상에 태어난 것.
◆세계 최고를 향해 대구를 찾다
디알비필드로봇은 원래 부산 기업인 동일고무벨트㈜의 계열사다. 1945년 설립된 동일고무벨트는 주로 고무를 활용한 산업용 벨트 등의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업체다. 전동벨트, 컨베이어벨트, 건설 기계용 및 농업용 궤도(크롤러), 토목건축자재를 생산하던 이 업체는 2000년 들어 미래의 유망한 새 먹을거리를 찾다가 로봇 분야에 뛰어들었다. 2001년 디알비파텍㈜이라는 계열사를 차렸으며 당시엔 주로 용접·조립라인 등의 자동화 물류장치인 산업용 로봇에 손을 댔다.
그러다 지난해 초 지식경제부와 생산기술연구원 로봇종합지원센터가 실시한 서비스로봇 시범서비스 사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화재진압 로봇 개발에 나섰다. 또 세계 최고 기술력이 응집된 로봇 개발을 위해 로봇산업을 광역권 선도산업으로 선정한 대구를 찾았다. 지난해 4월 별도 법인 형태로 디알비필드로봇이 탄생한 것이다. 디알비필드로봇 박동화 차장은 "로봇기업 육성에 시정을 집중하겠으니 대구에 투자를 해달라는 대구시 요청에 따라 지난해 대구에 진출하게 됐다"며 "특히 올 초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대구 설립이 확정되면서 대구를 선택한 회사의 미래가 한층 밝아졌다"고 말했다.
박 차장은 또 "로봇 개발을 위해 2002년 본사에 설립한 필드로봇연구소의 핵심 기능을 대구로 대부분 이전했다. 핵심연구원 8명 중 6명이 현재 대구 디알비필드로봇에 근무하고 있다"며 "대구를 발판으로 삼아 세계 최고의 화재진압 등 필드로봇 개발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초 실내 화재진압 로봇
디알비필드로봇이 개발한 화재진압 로봇인 '파이로(FIRO)-F'는 폭 850㎜, 높이 830㎜, 길이 1천400㎜ 크기의 아담한 사이즈의 로봇이다. 하지만 화재 현장에서의 능력은 탁월하다. 원격 조정이 가능하며, 수직 장애물 20㎝를 뛰어넘고 35도의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무게가 350㎏이어서 3, 4명의 소방관이 힘을 합하면 쉽게 들 수 있도록 경량화했다. 최고 속도는 7㎞/h이며 500℃의 열을 1시간 이상 견뎌낼 수 있도록 내열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파이로-F'가 자랑하는 능력은 열영상 카메라가 앞뒤 한 개씩 장착돼 있어 눈으로 볼 수 없는 짙은 연기 속에서도 현장의 상황과 생존자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대당 가격인 수천만원에 이르는 열영상 카메라가 장착된 덕에 로봇의 가격도 1억원을 호가하지만 위험한 상황에 소방관의 목숨을 지켜주면서 화재 현장의 인명을 구호하는 데는 적격이다.
디알비필드로봇 이우준 선임연구원은 "2005년부터 정부 주도사업에 참여해 화재진압 로봇 개발에 착수했다"며 "전세계적으로 만든 사례가 없는데다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해 개발하는데만 5년이 걸릴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이 전한 5년간의 개발활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필드로봇연구소 연구원 8명이 '파이로(FIRO)-F'를 제작하기 위해 달라붙었다. 참고할만한 연구결과물이 거의 없어 1년 동안 국내는 물론 외국의 소방관들을 찾아다니며 소방로봇의 그림을 그렸다. 소방관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욱한 연기 속에서 화재 현장의 상황과 생존자를 어떻게 찾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농연(濃煙) 투시가 가능한 열영상 카메라가 동원됐다. 대당 1천만~2천만원을 호가하는 이 카메라를 두 대나 부착하는 것은 로봇의 단가를 높여 상용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제품 개발비만 40억원가량 들었다.
이 연구원은 "실외는 물론 실내까지 전천후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로봇은 '파이로(FIRO)-F'가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기술력의 산물인 1등 로봇이라고 자평한다"며 "현재 우리나라 소방방재청이 '파이로(FIRO)-F'의 사용을 검토하고 있는데다 소방서 숫자만 10만개가 넘는 중국시장에 진출할 경우 소방로봇 시장은 앞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급부상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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