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五體投地)란 무릎과 팔꿈치 이마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큰절을 말한다. 상대방 발을 받드는 고대 인도의 예법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온몸을 땅에 붙이며 나를 낮추는 오체투지의 의미는 겸손에 있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상태에서 높고 낮은 경계는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겸손은 교만을 버리게 하고 구별과 차별의 어리석음을 참회하게 한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양보의 마음을 배우는 몸짓이라고도 한다.
겸손은 가진 자의 의무라고들 말한다. 자신의 부와 지위를 위해 희생해 준 사람들에 대한 당연한 도리라는 것이다. 오체투지로 전국을 순회하는 사람들의 힘든 여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겸손과 나눔을 생각하게 한다. 느리고 힘들지만 그들의 행로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오만과 탐욕을 버리는 대신 지켜야 할 가치를 이루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기도한다.
우리를 비롯해 동양의 배례법인 절은 오체투지와 비슷하다. 이마나 온몸을 땅에 붙이지는 않지만 몸을 낮추는 형태는 같다. 절은 어른에게 한다. 온몸을 굽힘으로써 존경과 복종을 말한다. 절하는 풍습은 설날 전후의 세배로 여전히 이어져 온다. 섣달 그믐의 묵은세배나 설날 아침의 세배는 모두 평안과 건강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세배를 받는 어른들은 음식과 세뱃돈을 건네며 한 해의 평안과 풍족함을 기원하는 덕담으로 답례한다.
지난주말 서울의 한 사찰에서 사법연수원생 수십 명이 1080배를 했다. 108배는 너무 가볍고 3천배는 너무 힘들어 중간을 선택했다. 수험 생활을 할 때 절을 해 주었을 가족의 고마움을 생각하며 절을 한 이도 있고 절을 하며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이도 있었다. 지켜본 주지 스님은 앞으로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판단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사심과 편견을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말을 건넸다.
불교에서 108배의 의미는 생명에의 성찰과 겸손, 그리고 나눔에 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며,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 있는 목숨의 귀중함을 생각하며 108배를 시작한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며, 원한과 성냄을 버리려는 다짐도 한다. 약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으며, 가진 자 못 가진 자 건강한 자 병든 자가 함께 손잡는 마음도 가진다. 그러나 그 모든 마음 못지않게 스스로를 위해 절하라고 가르친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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