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눈(雪)

입력 2010-01-23 07:22:33

눈밭에 발자국, 숯으로 눈사람 눈썹…그 때가 그립구나!

김옥희
김옥희
이유진
이유진

♥ 하얀 눈처럼 고운 세 아들의 마음씨, 고마워(사진)

와! 눈이다. 눈 구경하기 어려운 대구에 정말 오랜만에 애들과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웃고 떠드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쁨도 잠시 뒤로하고 낮에 아르바이트로 신문배달을 하는데 시간이 다 되어 집을 나설 때 쌍둥이 아들들이 "엄마, 오늘 눈이 와서 미끄러운데 우리가 도와드릴까요?"한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은 얼마 전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있었다. 휘몰아쳐 올라오는 파도에 휩쓸려 방파제 앞으로 밀려갔는데 다행히 오리털 파카를 입고 있어서 물위에 떠 "엄마, 나 여기 있어요"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밧줄과 타이어로 어렵게 건져냈다. 아들을 부여안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두 아들을 데리고 신문배달을 시작하는데 오토바이가 추위에 얼어붙어서 작동이 안 됐다. 할 수 없이 시장바구니에 신문을 싣고 '너는 이쪽 골목, 너는 저쪽 골목' 이렇게 셋이서 미끄러운 눈길을 몇 시간을 걸어서 배달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막내 아들이 "엄마, 매일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시는지 몰랐어요. 힘드시죠?"한다. 아들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몰래 눈물을 훔쳤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첫애와 쌍둥이 아들 둘. 아들 셋을 혼자 키우면서 힘든 일들, 울며 밤새워 지새운 날들이 하나 둘 기억이 스쳐 지나면서 어느새 커서 엄마 힘든 것을 알아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대견스러웠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큰애가 김치를 넣고 고소하게 김치볶음밥을 준비해 놓고 동생들과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며 웃으며 문을 열어준다.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오늘, 하얀 눈처럼 예쁜 아이들의 마음이 감사하고 고맙다. 내 마음을 아는지 눈사람도 웃음 짓는 모습으로 서 있다. 아들들아 사랑해!

김옥희(대구 달서구 송현2동)

♥ 눈이 그저 좋았던 어린 시절 그리워

고향이 충북인 나는 어릴 때 눈이 참 좋았다. 눈이 오면 강아지처럼 좋아서 온 들판을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고 꽁꽁 언 연못에 가서 스케이트도 탔다. 변변한 장갑도 없어 손이 빨갛게 얼고 신발 속에 눈이 들어가서 발이 얼었다 녹았다 동상이 걸려도 눈이 좋아 종일 눈밭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던 기억도 있다.

해질 무렵 다 젖은 옷을 7남매가 한아름 벗어 놓으면 엄마는 한숨을 내쉬셨다. 물도 귀하고 빨래도 잘 안 마르는 겨울에 그것도 손빨래를 하려면 한숨이 절로 났을 것이다. 그런 눈에 대한 추억이 많은데 이제는 운전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눈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펑펑 내리는 눈을 보면 동심으로 돌아가 '어머 눈 온다' 탄성을 지르다가도 눈이 많이 오면 안 되는데, 아니 눈이 오는 대로 녹았으면 좋겠다, 해가 나서 눈을 녹여 주어야 할 텐데…온갖 생각들이 다 든다.

뉴스에서 눈길에 사고라도 났다고 하면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 하고 눈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차가 많이 없던 시절, 좀 불편하긴 했어도 교통사고는 없어 좋았는데 눈이 무서운 공포가 될 줄은 몰랐다. 눈을 마음껏 좋아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함종순(김천시 개령면)

♥ 어릴 때 눈 궁궐 만들던 추억 생각나

유년의 추억은 늘 눈과 함께였다. 아버지의 큰 기침 소리는 어서 일어나 지붕 위 눈을 끌어내리라는 소리다. 눈 무게에 지붕이 혹여 조금씩 내려앉을까 염려된다며 밤새 눈이라도 내린 날이면 새벽같이 우리를 깨워 세운다. 손잡이가 길고 넓적하게 나무로 만든 삽을 지붕 위로 던져 눈을 끌어내리고, 다음은 대문 밖 이웃집과의 통로를 내고 우선 급한 곳부터 눈을 치우다 보면 눈은 신작로 아래 밭으로 모아지면서 눈 더미를 이룬다.

우린 모아진 눈 더미를 삽으로 입구부터 파 들어가면서 다져 눈 궁궐을 만든다. 그때는 항상 누구네 집이 아닌 바깥에서만 놀던 시절이라 이 눈 궁궐 안은 추위를 피할 수 있어 겨울 동안 놀기에 무척 좋은 공간이 된다.

의자도 가져다 두고 임금과 신하 놀이도 하며 놀다가 비료 포대를 들고 언덕진 밭으로 올라가 앞사람 허리춤을 잡고 길게 기차를 만들어 타고 내려온다. 밭고랑이 있어 울퉁불퉁하면 더욱 신이 난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서 밤새도록 눈싸움이 시작되어 온몸이 눈과 땀에 젖어 들도록 눈 위를 뛰어다녔다. 그때만 해도 하얀 눈을 자주 입으로 가져가 먹기도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 위에 발자국으로 예쁜 해바라기를 만들고, 눈사람 눈썹은 숯으로 입술은 붉은 건고추로 목도리를 풀어 눈사람에게 둘러주고 모자도 씌워주고 나무 가지로는 팔도 만들어주고 장갑도 끼워주며 그렇게 겨우내 눈과 함께한 태백의 내 어린 시절이 그립고 눈이 그립다.

안순이(대구 수성구 신매동)

♥ 제왕봉 설경에 힘들었던 여정 싹 가셔(사진)

눈이 펑펑 쏟아지고 며칠 뒤 남편이랑 눈 속으로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설경 속에 빠지다 보면 마음속까지 깨끗이 씻기고 더 좋은 일만 가득 채우게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컵라면 두개랑 뜨거운 물, 그리고 감귤 두개에 초콜릿 두개 넣은 배낭은 힘이 더 센 내가 메고, 디지털카메라도 호주머니에 넣고 산을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설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을 생각하면서 제왕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주위에 펼쳐진 설경을 보면서 가는 길은 예상보다 미끄럽지 않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제왕봉에서 추억을 만들기 위해 디지털카메라로 여기저기 설경을 담으려는데 카메라가 작동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충전을 다해서 왔는데 아무리 만져도 카메라는 말을 듣지 않았고 손가락은 얼어붙을 것 같아서 추억 만들기를 포기하고 미타봉으로 발길을 옮기기로 했다.

무거운 짐을 줄이기 위해 햇볕이 잡아당기는 양지쪽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컵라면으로 몸을 녹였다. 커피를 마시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러보았다. 설경이 렌즈 안으로 쏘옥 들어온다. 그럼 그렇지. 사람도 동태되기 일보 직전인데 말 못하는 기계라고 온전하겠어. 난 그때부터 나뭇가지에 핀 눈꽃부터 자연이 그려주고 간 멋진 설경을 렌즈 속으로 끌어들이면서 미타봉 정상에서 일주일 동안 힘들었던 여정을 내려놓고 개운한 마음으로 하산했다.

이유진(대구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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