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책읽기]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정광모 /시대의창

입력 2010-01-14 14:11:02

국가예산은 국민혈세…관심 갖고 꼼꼼히 지켜봐야

2010년도 예산안이 야당 의원들의 반대 속에 국회에서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됐다. 정부여당이 예결위 회의장소를 야당에게 통보하지 않고 몰래 바꾸어 기습 처리했고, 국회의장은 불법 논란을 뒤로하고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 292조8천159억 원을 전격 의결시켰다.

막대한 국민혈세가 제대로 된 검증과 논의, 합법적 진행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통과된 것이다. 한 해 예산 292조, 대체 얼마나 큰돈일까? 총예산 중 공무원 인건비를 제하고 실제 쓸 수 있는 돈 269조는 우리나라 경제를 대표하는 10대 기업의 1년 매출액을 모두 합한 돈보다 많다. 게다가 예산은 대기업의 매출액과 달리 바로 쓸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수십조, 수백조에 이르는 나라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예산전쟁은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너무 단순하게 보도된다. 집안 살림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애쓰는 서민들이지만, 천문학적 수치가 오가는 나라예산문제는 뉴스를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광모의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은 대한민국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분석한 책이다.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인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라 실질적인 분석이 돋보인다. '민간투자사업,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장을 보자. 대구의 첫 민자 유치 도로인 '범안로'의 경우 민간투자사업의 한 예인데, 대구시가 민자 사업 시행자에게 매년 100억 원 이상씩 적자를 보전해주고 있다. 그러자 시민들이 '혈세 먹는 하마'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범안로의 실제 통행량은 도로 건설 당시 추정통행량의 30% 안팎에 머문다. 범안로뿐 아니다. 대구~부산 고속도로에 대해 정부는 2006년에만 547억 원을 지급했다. 천안~논산 고속도로는 총 1천984억 원, 우면산터널 도로는 327억 원, 광주 제2순환도로는 419억 원(2001~2006년)을 지급했다. 이들 사업들의 교통량은 협약교통량의 50%를 밑돈다. 정부가 나랏돈으로 이들 민자 사업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적자보전액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늘어만 간다. 왜 정부가 민자 사업의 적자보전액을 지급해야 할까? 이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 때문인데, 민간 기업이 건설하는 시설의 운영수입이 추정운영 수입보다 적으면 국가가 적자를 메워주는 제도이다.

민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요예측인데, 우리나라 민간투자사업의 교통량 추정은 형편없다. 통행량을 과다 적용하거나 도로노선의 연장, 용량 등 기초자료를 사실과 다르게 입력해 교통수요를 부풀려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요에 대한 과다예측으로 민간 투자 사업을 하고, 모자라는 비용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전해주는 것이다. 사업자로서는 참으로 손쉬운 돈벌이 방법이다. 민자 사업의 최소운영수입보장제를 운용하고 있는 경우가 외국에는 없다고 한다. 대구에는 앞산터널이라는 또 다른 민간 투자 사업이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되고 있는 중이며, 전국적으로 보면 이런 민자 사업의 예는 엄청나게 많다.

저자는 '예산낭비, 누구 호주머니의 돈인가?'라는 장에서 공무원과 공기업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이익집단임을 지적한다. 이익집단은 자체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적절한 명분도 잘 내건다. 문제는 이들이 자기 호주머니 돈이 아니라 나랏돈을 쓴다는 점이다. 막대한 나라살림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공무원들이고, 국회 결산은 거의 형식만 남아있다. 결산을 잘해도 국회의원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고, 언론이나 지역구민 누구도 주목하지 않기에 누구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 밖에도 저자는 지방자치단체가 기를 쓰고 지방공항과 국제경기대회를 유치하려고 경쟁하는 이유, 사용내역도 없고 결산도 없으며 힘 있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돈인 특별교부세의 병폐, 사교육을 잡기는커녕 학교를 또 하나의 사교육시설로 만들 뿐인 방과 후 학교 등 국가예산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책을 읽다 보면 국민들이 나라예산에 관심을 갖고 똑똑히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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