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운주사 가는 옛길

입력 2010-01-11 08:10:35

김승해
김승해

가까운 사람 몇이 마음을 모아 대구에서 먼길, 전남 화순 운주사(雲住寺)에 가기로 했다. 달력에 동글동글 동그라미를 쳐 놓고는 아이처럼 설레며 손꼽아 운주사 갈 그날을 기다린다. 아직 몇 날이나 남았는데 이미 마음은 남도의 겨울 들녘을 지난다. 몇번 가본 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운주사는 내 마음에 몰래 숨겨둔 성지(聖地)이기 때문일 것이다.

화순 땅 운주사, 누운 부처를 처음 본 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곳엔 부처 아닌 돌이 없었다. 뭉툭하고 비뚤어진 돌들이 부처라니. 코가 떨어져 나간 삐딱이 부처님을 본 순간 천하 귀신들도 탄복할 절을, 꼭 한번 올리고 싶었다.

운주의 골짝에 드는 순간부터 그곳은 부처의 땅이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여기저기 버려진 듯 보이는 돌탑과 돌부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운주사는 여러 언론을 통해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절집이지만 그곳은 생각보다 작고 아늑한 곳이다. 요즘은 불사를 해서 정비가 많이 되었다 하더라도 운주사는 산도 들도 아닌 만산 계곡 길가와 논밭에 소박하기 짝이 없는 생김새의 석불과 탑들이 세월의 이끼를 껴입고 여기저기 서 있는 곳이다. 어떤 부처는 땅 위에 머리만 내놓은 채 꿈을 꾸고 있고 또 어떤 이는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 있거나 혹은 쓰러져 있으며 아예 산 위에 거꾸로 누워 있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보라. 그저 한 무더기 돌덩이를 만나도 그것이 탑이 되고 불상이 되게 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이루어내는 천불천탑의 꿈을. 대체 어떤 간절함이 저 돌무더기들을 천불천탑으로 이루었을까? 못생긴 돌부처와 돌탑이 어울려 만드는 세상. 사람들은 돌부처가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누워있는 와불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누운 부처는 삼매에 들었는가? 이 고통 가득한 추운 세상, 아파하는 우리를 두고 천년을 편안한 선정에 들었다면 그것이 부처일까? 저 누운 부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아프고 추운 세상의 우리를 대신하여 몸져누워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해 새날의 꿈을 이루게 하는 것은 우리의 간절함일 것이다. 간절함은 돌무더기도 천탑을 이루게 한다. 새해 새날의 계획들, 다짐들도 우리의 간절함만 있다면 천탑을 이루듯 소망의 탑을 이루고 말 것이다. 작심삼일의 내 다짐 위에도 간절함을 새로 놓아 돌탑을 올린다. 이 간절함은 어디로 가 닿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달력만 자꾸 본다. 오늘 밤에는 운주사 가는 옛길을 타박타박 걷는 꿈이라도 꾸고 싶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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