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근하신년' 연하장이 오고 가는 게 이맘때쯤 풍속이다. 근래에는 엽서 크기만 한 소책자를 넣어 보내는 것도 유행이다. 월간지 '좋은 생각' 류의 짧은 글들이 50쪽 안팎 분량에 담겨 있어 부담없이 읽는 중에 마음의 양식이 된다. 대량 인쇄된 데다 주소까지 프린트돼 친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받아서 오히려 성가신 연하장에 대한 반감을 반영한 것이리라.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이 보낸 올해 연하장은 형식에서가 아니라 내용에서 뜻 깊은 것이다. 독립운동가 권오설 선생이 권태동이라는 집안사람(돌림자로 미뤄 권태동이 권오설 선생의 할아버지뻘이지만 연배는 낮은 듯하다는 게 김희곤 관장의 설명이다)에게 보낸 옥중 엽서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 연하장이다.
"날이 새로울사록 몸이 새롭게! 달이 새로울사록 맘이 새롭게! 해가 새로울사록 일(行)이 새롭게! 되여지이다."
권오설은 1926년 융희황제(순종)의 인산일을 맞아 6'10 만세 운동을 기획하고 중심 활동을 펼쳤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거사 사흘 전 일제에 발각돼 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출소 100여 일을 앞두고 1930년 4월 갑자기 순국했다. 일제는 선생에게 가한 고문의 흔적을 지우려고 시신을 철제 관에 넣고 못질까지 한 뒤 가족에게 넘겨주었다. 이 같은 악행은 78년을 전설처럼 전해지다 지난 2008년 선생의 묘를 부인과 합장하는 과정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그 철제 관은 지금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형무소 안에서도 일제의 폭력에 맞서 일제 경찰을 고소하는 고문 사건 항의 운동을 벌이며 강철같이 싸웠던 선생이지만 친척에게 보낸 이 글에서는 한없이 인간적인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내일에 대한 희망을 더욱 굳건히 하는 선생의 의지도 읽을 수 있다.
선생이 이 글을 쓴 것은 투옥 다음해인 1927년 또는 28년 연말이나 연시로 추정된다. 형기를 채 절반도 마치지 못한 때임을 감안한다면 선생이 얼마나 꺾이지 않는 정신의 소유자인지 짐작이 된다. 그러면서도 나라와 민족의 새날을 고대하는 선생의 간절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강추위가 매섭지만 선생이 감당했을 한파에 비하겠는가. 국치(國恥) 100주년을 맞아 선생의 기원처럼 몸과 마음과 행동을 우일신(又日新)하자는 다짐을 해본다.
이상훈 북부본부장 azzz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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