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경북대 영재교육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협화음 오케스트라'란 주제로 3주간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렌줄리(Renjulli)의 3부 심화 모형'에 따라 1단계에는 파동과 관련된 전문 서적, 잡지, 비디오테이프 등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아이들에게 광범위하고 다양한 주제를 접할 수 있게 했다. 2단계에는 컴퓨터 및 각종 자료를 활용해 창의적 문제해결력과 다양한 의사소통 기능을 계발하는 소집단 활동을, 3단계에는 악기를 직접 제작해와서 소리 분석 방법을 통해 분석하고 악기의 제작 및 연주 방법에 대해 발표한 다음 직접 연주를 하게 돼 있었다.
아이들은 기존의 악기를 모방한 것에서부터 전혀 새로운 악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악기를 제작해 왔다. 그 중 특별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차례가 되자 아이는 가정에서 튀김 요리에 사용하는 긴 나무젓가락 하나를 가방에서 슬며시 꺼냈다. 일부 아이들은 야유하고, 또 일부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러나 진지하게 그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을 떼지 않았다. 나 또한 내심 실망감이 들긴 했으나 우선 지켜보기로 하였다. 아이는 자신의 악기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드디어 연주를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동요 '비행기'를 연주하고 난 후, 아이들의 입에서는 나지막하나 강한 환호성이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나왔다. 그다음 '학교 종' '퐁당퐁당' 등을 연이어 연주했고, 그때마다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아이는 나무 막대의 길이를 다르게 하여 충격을 주면 길이에 따라 각각 진동수가 다른 음이 나오며 정확한 음을 찾고 연주에 익숙해지기 위해 며칠을 밤늦게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정말 기특하고, 그 열정이 가상했다. 렌줄리의 영재조건 중 과제 집착성 면에서는 진정한 영재가 아닌가 싶다. 수업의 끝자락에서 아이들이 만든 악기로 합주할 때의 진지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영재원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면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보인다. 진로가 뚜렷해서 자기 관리가 철저하며 좋아하는 영역에 대한 사랑이 지나칠 정도이다.
예닐곱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산길을 가다 지치면 아버지는 재미있는 놀잇감을 만들어 내 다리에 힘을 불어 넣어 주셨다. 버들강아지 줄기를 틀어 껍질을 빼서는 순식간에 버들피리를 만들어 주셨고, 개망개(청미래덩굴 열매) 잎으로는 풀피리를 불어 주셨다. 또 작은 개울을 건널 때는 억새 잎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지친 다리를 잊게 했으며, 대나무로 물총과 대나무총, 그리고 활과 화살 만드는 법을 알려 주셨다. 아련한 추억 속의 그리움이 되어버린 것들도 있지만, 현재를 지혜롭게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아이들에게 과학적 원리를 가르치는 데 적절한 소재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 감사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물리 교육을 실천하면서 추억 속의 놀잇감들은 따스한 아버지의 사랑과 정뿐만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메아리로 다가왔고, 아이들에게 딱딱한 물리가 아닌 생활 속의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됐다. 대형 놀이공원, 동네 놀이터, 각종 스포츠 경기, 자전거를 비롯한 운송 수단, 레코드와 같은 악기는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들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밑에 깔려 있는 과학적 원리나 법칙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예측력은 과학적 원리나 법칙으로부터 부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순(경북대사대부고 교사)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철우 "안보·입법·행정 모두 경험한 유일 후보…감동 서사로 기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