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독서의 계절 추천도서 2

입력 2009-11-28 08:00:00

'젊은 날의 초상'을 펴면 25년전 동생이 읽힌다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패션 아울렛 올브랜 10만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원고 분량은 제한 없습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체육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임명애(대구 수성구 신매동)

다음 주 글감은 '독서의 계절, 추천 도서Ⅲ'입니다

♥억지로 장애인 도왔는데 엄마가 고맙다며 책 선율

이 책만 읽으면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던 남자아이가 떠오른다. 턱받이 수건을 한 그 아이는 항상 입을 벌리고 있었고 눈빛이 흐릿했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항상 웃고 있었다. 자폐장애아였다. 그리고 한 주마다 바뀌는 짝꿍 중 한명이었다. 어린 마음에 정말 싫었다.

나까지 반 아이들한테 놀림당할 것 같고 항상 바보같이 웃는 모습이 싫었다. 어느 날 항상 데리러 오시는 그 아이 엄마가 일이 생겨 못 오시고 짝꿍이라는 이유만으로 집까지 바래다주라는 선생님의 부탁, 아니 명령으로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혼자 있을 수 있냐는 말에 그 아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래 알겠다며 나가면서도 발길이 떨어지질 않아 그 아이 엄마가 오실 때까지 같이 있어줬다. 2시간 정도 흘렀을까 그 아이 엄마가 오셨고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며 맛있는 간식과 함께 책을 선물로 주셨다.

어린 나에게 왜 책을 주셨는지 아직도 아이러니하다. 무슨 책인지도 모른 채 뭔가 선물받았다는 기쁜 마음에 집을 나서는데 그 남자아이는 문 앞까지 나와 떨리는 작은 입으로 힘겹게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 아이를 싫어했던 나는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죄스러운 마음에 집으로 걸어가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두 달도 안 되어서 그 아이는 다른 지방으로 전학을 갔고 난 왠지 모를 무거운 마음에 사죄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이해가 안 되는 그 책을 다 읽고 말겠다며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자기 앞의 생', 이 책은 에밀 아자르의 책이다. 14세의 주인공 꼬마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 산다. 한때 프로방스 거리의 창녀였으나 지금은 예순다섯의 할머니가 된 유태인 로자 아줌마는 동네에서 창녀들의 아이들을 돈 받고 대신 길러주는 일을 한다. 모모 역시 창녀의 아이로 엄마와 아빠가 누군지 모른 채 로자 아줌마한테 맡겨졌다.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모모는 엄마와 아빠에 대해 묻지도 않는다.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성장 환경 속에서 모모는 성숙하게 소년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러던 중 항상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던 로자 아줌마가 병에 걸려 아프게 되자 모모는 이 세상에 자신 혼자 버려질까봐 두려워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모모를 통해 '자기 앞의 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가볍지만 절대 가볍지 않는 책이다. 닳고 닳은 이 책만 보면 나는 바보같이 눈물 반 웃음 반이 된다. 그 어릴 때 남자아이에게 미안해서, 꼬마 모모가 불쌍해서….

박선영(대구 북구 고성동)

♥과잉이 결핍을 낳는 시대 도전장 낸 '월든'

여러 종류, 수많은 장르의 책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철학과 같이 전문성과 특정 주제를 가진 책이 있고, 삶의 교훈과 감동을 주는 책도 많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월든'은 이와 같은 모든 의미를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문명을 통찰하며, 문학적 가치를 함께 지닌 명작이다. '월든'은 19세기의 대서사시이다. 동서양의 사유를 넓고 깊게 아우르는 소로우의 문체가 끝까지 아름답고 빛난다. 400쪽에 가깝지만 책 속에 나오는 가계부의 숫자까지 내게는 귀한 시어로 읽혔다.

작가의 삶과 작품이 혼연일체를 이룰 때 그 책은 더욱 오래 살아있는 법이고, 보통의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길을 뛰어난 사람이 홀로 갈 때 그 길은 등불이 된다. 소로우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다. 소박하고 자연적인 삶이 좋아서 콩코드 숲에 작은,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통나무집을 지어 자급자족하며 산다. 그때의 기록이 '월든'이며 월든은 그곳의 호수 이름이다.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정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21세기 사람들에게 경전 같은 음성으로 뼈저리게 들려준다.

'월든'을 읽지 않고 소문만 들은 사람들은 소로우가 무슨 대인공포증에 걸린 은둔자쯤으로 오해한다. 그는 그 누구보다 세상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며, 마하트마 간디와 사회학자 스콧 니어링이 소로우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과잉이 곧 결핍을 배태하는 이 시대에 '월든'의 잠언을 거듭 되새겨 본다. "당신의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사람이 되라.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 않다."

조은지(대구 북구 대현동)

♥젊은 날 힘들어하는 자녀 지켜보는 부모에게도 추천

25년 전 이십대 중반의 나는 젊은이들의 절망과 고뇌를 이해하지 않는 애늙은이였다. 가난한 현실 앞에 '자신의 비겁과 우유부단을 피상적인 자기 학대로 여기는 변명'은 사치스런 고민이었다고 생각했다.

매캐한 최루탄 가스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그냥 현실에 안주 못하고 사는 그들의 용기를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반항이라고 매도했다. 1980년대 학생들의 시위가 많았고 남동생도 그 즈음의 현실 때문인지 나날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나는 이해해 보려는 마음보다 원망이 앞섰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희망인 남동생에게 우리 가족들은 학점에만 목숨 거는 반듯한 모범생이 되어 주기를 원했다. 혼란스런 그 젊은 날을 동생은 고뇌 속에서도 잘 넘겼다. 지금은 적당히 상사에게 아부도 하며 처자식 거느린 평범한 소시민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누구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미로를 헤매는 시절은 다 있다. 나의 아들도 그 시절의 동생의 나이대가 되었다. 조금 더 있으면 나름대로의 이론과 불합리성, 현실의 모순 등의 이유로 절망감을 느낄 날도 올 것이다.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말을 아들에게 해주며, 따뜻한 눈빛으로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이 소설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그 옛날 동생의 절망을 조금은 이해해주며 혼란스러운 때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었을 것을….

여러 가지 이유로 젊은 날을 힘들어하며 지내는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내가 그랬듯이 이 한 편의 소설이 청량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허준희(대구 달서구 이곡동)

♥ 나 자신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끼고 사랑하길

인생의 절반을 살아가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세월 가는 대로 살았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옷 한 벌을 제대로 사 입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아끼고 또 아끼다보니 내년이면 내 나이 쉰인데 나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우연히 '당신도 그림처럼'(이주은 지음)을 읽고 보니 '그래 나 자신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끼고 사랑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리. 이제부터라도 나 자신을 돌봐야겠다. 내 모습을 그림처럼 마음의 벽에 걸어 언제보아도 아름답게 우아하게, 언제보아도 웃고 있는 한 폭의 그림처럼 살아야겠다.

이명숙(대구 북구 산격4동)

♥ 보릿고개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읽혖고픈 책

가을걷이가 끝나고 초겨울 찬바람이 황량한 들판으로 흩어진다. 이즈음 며칠 동안 읽은 책이 권정생 선생님의 소년소설 '몽실언니'다. 50여 년 전 보릿고개를 넘기던 우리네 질퍽한 마을 이야기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가난과 전쟁으로 얼룩진 세상을 살아내며 이 세상 모든 아픔을 감싸 안았던 몽실언니가 어쩌면 알령재 너머 골짜기에 살았을지 모른다. 또는 은실 다리 넘어 모로골 마실에서 살았을 것 같은 전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로골 마실의 비스듬한 산자락에 모여 있는 몇 집 불빛은 북촌댁, 밀양댁 이야기들로 되살아날 것 같다. 몽실은 배다른 동생 난남이를 업고 이집 저집 문전걸식하며 삶을 이어 가지만 아무도 아무 것도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며 살아간다. 너무도 바보 같은 삶을 살았다고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오늘의 독자가 있을까? 그토록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몽실이는 구두 수선쟁이 꼽추 남편에게 시집을 가 기덕이와 기복이 남매의 새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소설의 끝을 맺는다.

보릿고개를 모르는 요즘 아이들은 당시 삶의 모습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우리 아이들이 그 삶을 이해한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만큼 풍요가 넘치고 물질이 넘치고 있는 요즘이다.

오현섭(군위 소보면 송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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