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천국 12월 대구' 약일까 독일까

입력 2009-11-21 07:33:48

'살인마 잭' 등 6편 잇따라 공연… 구미 '젊음의 행진' 포함땐

살인마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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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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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지금 뮤지컬 천국이다. 12월 한달간 공연되는 작품만 해도 '살인마 잭' '시카고' '김종욱 찾기' '올슉업' '빨래' 등 대·소극장용 6편, 가까운 구미에서 공연되는 '젊음의 행진'까지 치면 7편이다. 모두 서울에서 흥행을 기록한, 잘 팔린 작품들이다. 여러 작품들이 한꺼번에 티켓 박스를 열면서 공연기획사들은 관객 분산을 걱정하고 있다. 서울 다음으로 전국 최고의 뮤지컬 소비 시장으로 급부상한 대구. 뮤지컬 도시, 대구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대구는 지금, '뮤지컬 천국'

"같은 시기에 두개 뮤지컬만 경쟁해도 관객이 분산되는데, 한꺼번에 7편이라니요. 관객은 좋을지 몰라도 기획사 입장에선 속이 탈 수밖에 없죠."

지역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올 한 해 대구에서 흥행을 거둔 뮤지컬은 대략 잡아도 '지킬 앤 하이드' '브로드웨이 42번가' '삼총사' '노트르담 드 파리' 등 4, 5편. 이 중 오리지널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지킬 앤 하이드'가 관객몰이를 한 게 불과 한달 전이다. 한편당 입장권이 10만원 안팎인 걸 감안하면 연말 특수를 감안해도 구매력이 12월에도 이어질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대구의 뮤지컬은 차고 넘친다. 배성혁 성우 기획 대표는 "어린이 뮤지컬, 뮤지컬 축제 기간 중 공연까지 포함하면 한 해 대구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60~80여편이고, 갈수록 공연 편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는 매력적인 뮤지컬 시장인가'에 대해 대부분 공연 관계자들은 "그렇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에서는 흥행이 된다'는 인식이 공연계에 각인됐다는 것이다. 2002년 '캣츠'와 이듬해 '맘마미아'가 기록적인 흥행을 거둔 게 크게 작용했고,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 개최가 뮤지컬 도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서울 제작사들도 대구를 염두에 두고 공연 일정을 짠다. 특히 연말에는 극장 대관이 어렵기 때문에 아예 대구를 겨냥하기도 한다"고 했다.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한 공연장 인프라는 대구 뮤지컬 시장을 키우는 배경이다. "부산만 해도 전문 기획사와 공연장이 태부족이라 '맘마미아' '시카고'조차 공연된 적이 없습니다. 계명아트센터나 오페라하우스,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등 1천~2천석의 대극장은 서울의 LG아트센터나 롯데 샤롯데 극장보다 규모·시설 면에서 더 앞섭니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최근 타 지역민의 대구공연 관람 경험을 분석해 보니 경북이 43.2%, 부산경남이 18.7%, 수도권이 9.1%로 나타났다. 지방 뮤지컬 관객을 끌어들일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내년 10월 말 지방에선 처음으로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는 파워엔터테인먼트 이철우 대표는 "2개월 반, 90회가량의 공연을 통해 13만명 관람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경북, 부산경남 관객까지 올 것"이라고 했다.

◆뮤지컬 도시의 명암

대구의 뮤지컬 시장이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기획사 측은 "성공한 2, 3편만 기억되고 나머지 7, 8편의 부진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며 "공연계가 대구 시장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대구 뮤지컬 시장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대구 관객들의 성향이다. 뮤지컬의 외적 성장만큼 대구의 관객 수준이 함께 높아지고 있을까. 일부에선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단적인 예가 '대구 관객들은 대형 작품과 스타(연예인)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만 선호한다'는 것이다. 다음달 대구에서 공연되는 뮤지컬만 봐도 '살인마 잭'이 안재욱, 유준상, '시카고'가 옥주현, 최정원, '올슉업'이 손호영, '빨래'가 임창정 등을 홍보 전면에 앞세우고 있다. 또 다른 공연 기획자는 "서울에서 히트했던 소극장 뮤지컬이 지난여름 대구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한 뮤지컬 팬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이어서 캐스팅이 당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이게 현주소"라고 했다.

반대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이른바 '스타 마케팅'이나 '대작 선호' 경향은 비단 대구뿐 아니라 서울, 멀리는 브로드웨이에 이르는 공통 현상이라는 것이다. 스타 마케팅의 경우 스타는 뮤지컬 무대를 통해 스타성을 연장할 수 있고, 제작사는 스타를 앞세워 티켓 파워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맞아떨어진 자연스런 결과인 셈이다. 또 하나는 영화배우, 가수 등 스타를 앞세웠지만 지역에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점이다. 파워포엠 최원준 대표는"결국은 작품성"이라며 "요즘에는 인터넷을 통해 공연 리뷰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관객이 냉정하다. 작품 선정에 고심을 하게 되는 것은 관객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혁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선 지역 창작 뮤지컬 활성화가 좋은 수단이 된다"며 "다만 지역의 창작 뮤지컬이 기성 작품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소극장 시설이나 뮤지컬 인력 양성 기관 설치, 투자회사의 유치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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