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세월] 김태환 전 대구시 도시계획 과장(중)

입력 2009-11-17 07:40:37

김태환 전 대구시 도시계획과장이 두류 공원 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김태환 전 대구시 도시계획과장이 두류 공원 조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김태환 전 대구시청 도시계획 과장은 30년이 넘는 공무원 생활 중 가장 보람을 느낀 것으로 공원과 근무를 꼽는다. 어떤 부서의 업무든 보람과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공원과 근무는 뿌듯함이 더 컸다.

"공원을 조성하고 거기 나무를 심고 가꾸면 울창하게 자라 시민들을 기쁘게 합니다. 나무는 해마다 자라니, 우리가 해 놓은 일이 해마다 자라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 면에서 상수도시설과 업무와 비교되는 면이 있습니다. 상수도 관로 매설 공사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또는 주택지 도로에 상수도관을 묻기 때문에 애로가 많습니다. 통행을 일부 차단하고 공사를 하거나 아예 통행량이 적은 밤에 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도 상수도관을 땅에 묻으니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거대한 수도관을 묻어놓고 '통수'하기까지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물을 흘려보내면 혹시 어디 새지는 않을까, 새는 정도가 아니라 땅속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솟아올라 온 동네를 물바다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통수를 시작하고 일주일이나 열흘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지내야 합니다."

수돗물은 공기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니 그 일의 가치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공원처럼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담당자로서는 힘들었던 기억만 고스란히 남는다. 그런 면과 달리 공원은 자주 눈에 띄니 즐거움이 더하다는 말이었다.

◇두류공원 조성 뿌듯해

김 전 과장은 1974년부터 1978년까지 4년 동안 대구시청 녹지국에 근무하면서 두류공원 개발을 담당했고 앞산공원 개발에도 참여했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는 계장으로 공원 조성 업무를 전담했다.

그는 두류공원 안의 굽이굽이 이어지는 3천10m 순환도로를 설계하고 시공한 당사자다. 요즘은 설계와 시공을 외주업체에 맡기지만 당시에는 설계와 시공뿐만 아니라 노무관리와 현장 잡무까지 공무원이 맡아하던 시절이다.

지금 두류공원 안의 순환도로에는 자전거와 보드를 타는 사람, 마라톤으로 건강을 다지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로 낮과 밤 구분 없이 붐빈다. 심을 당시 별 볼품없던 나무들은 30여년이 지나면서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했다. 나무들이 커가는 모습이 마치 대구가 커가는 모습 같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두류공원 조성 때는 측량이 무척 힘들었어요. 무허가 건물들이 많았거든요. 측량하면 곧 철거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마찰이 많을 수밖에 없었지요. 밤 10시, 11시를 넘어서까지 일할 때도 많았어요. 그렇게 어렵게 공사를 마쳤는데, 대구시민들에게는 참 고마운 공원이 됐지요."

두류공원을 조성할 무렵 그 일대는 대구의 외곽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의 중심부에 해당한다. 그만큼 대구가 넓어진 것이다. 약 171만9천m²(52만평)에 달하는 두류공원은 조성 당시 '너무 큰 공원'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의 자랑거리가 됐다.

김 전 과장은 우방랜드를 감싸고 도는 석축을 대견하게 성장한 자식 보듯 흐뭇한 눈으로 바라본다.

"30년이 지났지만 석축들이 어디 하나 뒤틀린 곳 없이 반듯합니다. 색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세월의 품격마저 느껴집니다. 거기에 쌓은 돌들은 당시 용연사 인근 산에서 가져온 것들인데 현장 노무자들과 함께 산과 계곡에 굴러다니는 돌을 어깨에 직접 메고 끌어내려 트럭에 실었습니다."

◇우방랜드에 관한 오해

두류공원 동쪽의 우방랜드는 우여곡절이 많은 유희시설지구다. 두류공원 서쪽은 정적인 시설들만 있어 이용객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동쪽에 동적인 유희시설을 건설한 것이다. 이 일대는 1980년대 초 '대구타워' 건설 중에 공사가 중단돼 흉물로 방치되고 있었다. 조성하다 중단했으니 두류공원 전체는 우범화되어 40여명의 경찰이 밤낮으로 지켜야 했다.

"그대로 둘 수도 없고, 뜯을 수도 없었어요. 뜯는 비용 역시 건설비용만큼이나 들기 때문이었지요. 공사를 이어가야 했지만 그걸 감당할 능력 있는 업체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당시 대구에서 아파트 건설로 명성을 떨치던 우방과 논의하게 됐습니다. 대구시 측에서는 현재 두류공원 일대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어렵더라도 우리 지역에서 번 돈을 우리 지역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맡아줄 것을 건의했습니다. 우방 측은 사업성이 없음을 알면서도 대구시 입장을 수용해 추진했습니다. 사업성은 없지만 우방의 명성은 남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 전 과장은 우방타워(대구타워)를 건설하기 위해 공무원들이 일본 미국 캐나다 등 해외 시찰을 통해 대구에 가장 알맞은 모델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결국 미국에서 현재 우방랜드와 조건이나 형태가 비슷한 모델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타워 건설이 재개됐을 때 시민들은 대구시가 우방에 특혜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오해였죠. 그 일로 두 차례나 감사원의 감사를 받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흠 잡을 게 없었지요."

공휴일,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찬 손님들을 보고 사람들은 사업자가 떼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분명한 나라에서는 봄과 가을에만 유원지에 손님이 몰릴 뿐이다. 그것도 공휴일에 한정돼 있다. 그럼에도 유원지는 관리, 가동돼야 한다.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계절마다 꽃단장을 해야 하고 이벤트도 해야 한다. 여름에는 방학도 있어 유리하지만 대신 비가 많이 내린다. 과연 시민들 예상처럼 떼돈을 벌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유원지 시설 계획 당시 서울랜드와 지금은 없어진 드림랜드 등을 견학할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그쪽 사람들은 한국에서 유원지 사업만큼은 하지 말라고 손자한테까지 유언을 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방 정부 입장에서는 유원지가 꼭 필요해요. 가족 나들이, 청소년 휴식처가 필요하니까요. 당시 우방은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우방랜드 개발을 떠안았어요. 시민들 입장에서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김 전 과장은 우방타워(대구타워)만 세워서는 유희시설의 기능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대구시가 공원 내에 유희시설 여건을 조성해주었다고 했다. 그것을 두고 '특혜'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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