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닉네임 남용 유감

입력 2009-11-13 14:19:12

인터넷이 생활화되다시피 하면서 아호나 닉네임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곤란했던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 하였을 터이다. 자신이 좋아서 짓는 별도의 애칭이야 굳이 탓할 바 아니지만 혹시 주변 사람들을 난처하게 했다거나 작은 혼란이라도 야기한 적이 있다면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험담을 읽었다. 모친상을 당한 동호회원한테 조문을 갔다가 '산꼭대기'라는 닉네임으로 통하는 상주의 본명을 몰라 전화로 물어 겨우 찾았단다. 더욱 가관인 것은 조문 간 회원들도 평소 닉네임으로만 통했기에 차마 방명록에다 '썩은 깔치' '아무개' '에헤라디야' '저승사자'와 같은 별칭을 쓸 수가 없어 순간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그렇다고 낯익은 닉네임 대신 본래 이름을 기재하면 상주인 회원이 누군지를 모를 것이니 황당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겠다.

꾸민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글을 읽고 쓴웃음이 나왔다. 물론 아호나 닉네임이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거나 실명으로 말하기 어려운 경우 가명으로 처리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보다 솔직하게 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호나 닉네임의 순기능을 간과한 채 추호라도 자기 과시나 익명성이 이면에 도사리고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역사에 길이 남는 대가들의 이름 앞에나 붙던 아호가 요즘 들어 너무도 흔하게 쓰인다. 문학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문인들이 경쟁하듯이 아호를 내놓는다. 차라리 본명 대신 필명만을 처음부터 사용한다면야 별 문제될 바 없다. 본명과 아호를 혼용하기도 하고 본명의 앞뒤에 아호를 병기하는 게 좀 혼란스럽다. 부모가 지어준 고귀한 이름을 놔두고 새로운 아호를 내세운다고 해서 지금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는 것일까.

인터넷 카페의 본문이나 댓글에서도 누가 쓴 글인지를 몰라 궁금할 때가 종종 있다. 나와 관련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아호나 닉네임 속에 필자가 숨어버리면 답답하게 마련이다. 실명 사용을 버젓이 당부하는데도 불구하고 가명을 고집하는 마음보를 이해하기 힘들다. 술기운에 내뱉는 말이나 가명으로 올린 글의 무책임함은 오십보백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 알기 힘드는 별칭으로 올린 글은 진실성이나 신뢰성에서도 의문이 간다. 온라인 상에서 본명 대신 가명 사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 입법을 검토한 적도 있지 않은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에 달고 다니는 막말을 개선하는 노력과 함께 아호나 닉네임 만연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여겨진다.

성병조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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