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그들만의 직장
뉴턴의 제3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 신라시대 1천년, 조선시대 500년. 여성과 남성은 서로 주도권을 주고 받는다. 통일신라 특히 선덕·진덕여왕들의 시대엔 모계 중심의 사회였다고 한다. 한 여성이 여러 남성을 거느렸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가부장적 유교질서는 여성을 철저히 권력의 변방으로 내쫓았다. 근·현대 사회에도 이는 깨지지 않다 이제야 큰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남성이 지난 수백년간 작용을 가한 만큼 이젠 여성이 반작용의 강력한 신호를 던지고 있는 것.
지난 10여년의 여권신장 흐름에서 이제는 남성들이 보호받아야 할 정도의 얘기가 오가고 있다. 군가산점제 부활, 남성할당제는 실력으론 여성만 뽑히니 남녀비율 조정 차원에서도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한 곳에선 속된 말로 '여자끼리 다 해먹는 조직'이 적잖다. 간부들이 모두 여자인 초등학교도 생겨나고 있으며, 여성 간부가 절반 이상인 곳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이 중심인 조직은 어떨까. 앞으로 여성 중심의 조직은 가속도가 더 붙을 것이다. 여성이 중심인 두 조직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72명 중 54명이 여성, 심평원 대구지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구지원에는 여성 직원이 전체의 75%에 달한다. 이 중 간부비율은 4대4로 동일하다. 여성 중심의 문화는 이미 자리를 잡았다. 지원장 역시 부드럽고 섬세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
특히 심사부는 여성이 100%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물론 업무 특성상 간호사 출신의 여직원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47명 중 행정직과 인턴 4명을 제외하면 43명 모두 여성이다.
이렇다 보니 재밌는 현상들도 많다. 매월 생일자를 챙겨주고, 회식은 자연스레 맛있는 식당에서 1차로 끝낸다. 대신 점심시간엔 삼삼오오 맛집을 찾아다닌다.
밥이나 술을 사도 '더치 페이'(각자 계산)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남녀의 차별은 털끝만큼도 없다. 똑같은 승진기회에 같은 월급, 수당이 적용된다.
심평원 대구지원 정순자 부장은 "남성들보다 지구력이 좋아 한 곳에 앉아서 실수없이 일을 잘 하기 때문에 장점이 더 크다"고 말했으며, 변진희 차장은 "육아정보, 좋은 책, 공연정보, 좋은 제품 등 생활에 유용한 정보들이 오가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는 가정이나 개인에 도움이 되는 얘기가 많다"고 여성 조직의 장점을 설명했다.
한국적인 특성 때문인지 단점도 적잖다. 좋은 물건을 누가 소개하면 5~10명 묶어서 다량 구입해 에누리 흥정이 곧잘 이뤄진다. 특히 여성들이기 때문에 부엌용품, 생필품들을 즉석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싼맛에 사다 보니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인 냄비, 프라이팬 등도 덩달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생리휴가는 따로 없다. 심평원의 경우 업무 강도가 높아 거의 매일 잔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똑같은 여성 입장에서 생리휴가 운운하다가는 '왕따'당하기 십상. 출산휴가자도 1년 내내 끊이지 않아 혹시 그 업무가 내게 넘어오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짐이다.
이 외에도 이 조직은 업무 부하가 많다 보니 연애할 시간이 없어 사내부부가 많은 편. 노처녀도 많아 지난해는 회사 차원에서 타 공공기관과 단체 맞선을 주선한 정도다.
김성규 지원장은 "부드러운 직장 분위기가 무엇보다 장점이며, 여성이 많다 보니 어떨 때는 직장보다 가정이 우선인 경우는 다소 아쉬운 부분일 것"이라고 털어놨다.
◆'빅5'가 모두 여성인 범일초등학교
대구 범일초등학교는 학교 운영의 빅5인인 넘버1 교장부터 교감, 교무부장, 연구부장, 행정실장까지 모두 여성이다. 지난 8월에 남성이었던 교감이 정년퇴직함에 따라 하나부터 열까지 여성 중심의 조직이 되어버린 것.
학교 교사들도 90% 이상이 여자다. 전체 교직원 52명 중 48명이 여성이다. 그나마 원어민 외국인 남교사가 1명 옴으로 인해 남자가 3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이들 여직원들 사이에선 '남교사를 한번씩 쳐다볼 때마다 1천원씩 내야 한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
이런 현상은 10년 전부터 시작돼 어느덧 여성 중심의 조직이 당연한 듯 여겨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순자 교장은 "여성들이 학교를 운영해 나쁠 게 전혀 없다"며 "정보사회에서 그렇게 힘 쓸 일도 별로 없을 뿐더러 오히려 학교운영에 있어 더 섬세한 곳까지 손을 뻗칠 수 있어 장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수경 연구부장도 "큰 소리가 나고 잡음이 날 일이 별로 없으며 학부모들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주변에서 공립인 범일초교가 명문사립으로 거듭나는 것 아니냐는 칭찬을 들을 정도"라며 공 교장을 거들었다.
실제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범일초교는 학교 주변과 식당 등 곳곳이 변화됐으며, 올해에는 대구시 합창대회와 합주대회에서 동시에 대상을 받는 겹경사가 생기기도 했다. 교장을 비롯한 여교사들끼리 과일이나 채소 등 농산물을 나눠먹는 것도 흔한 일. 교사이자 가정주부이기 때문에 나누고 베푸는 문화도 자연스레 교직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비협조적이거나 태클을 거는 교사들은 버텨내기 어렵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남학생들을 세상을 넓게 보고 큰 인물로 키우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만으로는 부족한 것. 이런 탓인지 학부모들 사이에선 남성 교사를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밖에서 밥 먹을 때 '오늘 내가 쏜다'는 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교사들 사이에선 '더치 페이' 문화가 대세이며 교장이나 교감이 함께할 때는 조금 달라진다.
현장 체험학습이나 소풍을 갈 때는 남성이 아쉽다. 아무래도 운전도 여교사들이 직접 해야 하며, 무대 등에 필요한 장치를 설치할 때도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가끔은 남성의 존재가 필요할 때도 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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