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의사 총 쏜 지점과 이토 총 맞은 지점 2곳 삼각형이 유일한 흔적
'맨 앞에 누런 얼굴에 흰 수염을 가진, 조그마한 늙은이가 염치없게도 감히 하늘과 땅 사이를 횡행하듯 걸어오고 있었다. "저것이 분명히 늙은 도둑 이토일 것이다"며 곧 단총을 뽑아들고, 그 오른쪽을 향해서 신속히 4발을 쏘았다…(중략)…만약 잘못 쏜 것이라면 큰 일이 낭패가 된다. 그래서 다시 뒤쪽을 향해서 일본인 단체 가운데서 가장 의젓해 보이는, 앞서 가는 자를 새로 목표하고 3발을 잇달아 쏘았다.' (자서전 '안응칠 역사'중에서)
100년 전 오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중국 하얼빈역 현장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그곳에는 안 의사를 기릴 만한 기념물은 물론이고 사건 현장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조차 없다. 역사 바닥에 표시된 자그마한 삼각형의 갈색 타일이 유일한 흔적이다. 중국 당국이 안 의사가 총을 쏜 지점과 이토가 총을 맞은 지점, 2곳을 갈색 타일로 표시만 해놓았을 뿐이다. 표시를 한 것도 2006년이었고, 그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곳을 찾기도 어렵다. 역 직원에게 물어봐도 잘 모른다. 취재진을 안내한 장영철(53) 하얼빈시 고려회관(안중근기념관)관장은 "현장을 보러왔다가 역 안을 헤매다 그냥 돌아가는 한국 관광객이 많다"며 "안내책자나 안내판조차 없어 현지인과 동행하지 않고는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현장에 가려면 역 매표소에서 1위안짜리 '입장권'을 구입한 후 중국 역이 대부분 그렇듯, 몰려드는 인파를 헤치고 힘겹게 전진해야 한다. 현장은 승객들이 타고내리는 플랫폼이 아니라 화물 하역장에 위치해 있다. 플랫폼에서 오른쪽으로 철길을 따라 100m 가까이 가다 보면 2개의 삼각형 표시가 있다. 바닥 타일 색깔과 구분되지 않아 유심히 살펴야 발견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안 의사와 이토 사이의 거리는 10m남짓(10보)으로 돼 있다. 현재의 두 삼각형 사이 거리는 5, 6m 정도로 기록보다는 다소 짧아 보였다. 하얼빈역이 그후 몇차례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했기 때문에 당시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정도 거리라면 소년시절부터 명사수로 이름 높던 안 의사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안 의사는 러시아 의장대 뒤쪽에서 벨기에제 브라우닝 7연발총으로 러시아 관리와 수행원과 함께 다가오는 이토를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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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현장에 서 있지만 당시의 감동을 느낄만한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현장 주변은 시끄럽고 소란스러웠다. 바로 옆에서 중국인 인부들이 화물을 하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삼각형 위로 화물을 실은 차량들이 계속 지나다녔다. 역사적인 현장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조선족인 서학동 하얼빈시 문화부국장은 "당초에는 삼각형 표시와 함께 표지석을 세울 계획이었는데 외교관계를 고려한 중국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됐다"며 "머지않은 시기에 표지석이 세워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동영상 장성혁기자 jsh052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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