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독립운동일 뿐…원한 없어" 이토 "동양평화 해친 주범…억울"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 두 사람이 오늘 마주앉았다. 둘의 관계는 100년 전에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 양 국민의 인식차이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토론에서 '과거는 현재의 창(窓)'이라는 역사의 엄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사회: 두 사람이 자리를 함께한 것은 처음이다. 100년 전을 돌이켜 보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안중근: 그때는 국권을 강탈한 늙은 도적을 처단하겠다는 각오뿐이어서 총을 쏘면서도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다. 독립운동을 위해서였지, 원래부터 이토공을 알지 못했는데 사사롭게 원한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토: 나를 쏜 범인이 한국인이란 말에 '바보 같은 놈'이라고 했지만 만나 보니 기백 있는 청년인 것 같다. 나도 대의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무사출신인 만큼 호감 가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 과거사 문제부터 짚어보자. 이토공이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했는데 적법한 조약이라고 생각하는가.
▶안중근: 조약은 원천 무효다. 군대를 동원해 협박하고 대한제국 황제의 옥새를 훔쳐 맺은 조약이다. 만국공법(萬國公法)에도 어긋난다. 이웃나라로서, 같은 아시아민족으로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나라를 빼앗는 것은 강도짓이다.
▶이토: 적법한 절차를 밟은 조약이다. 한국정부 대신들의 다수가 서명 날인했고 황제에게 재가를 받았다. 고종이 마지막에 희망한 '한국이 부강하게 되어 독립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는 이 협약을 철회한다'는 조문까지 반영돼 있다.
▶안중근: (목소리를 높이며) 조약을 강제로 맺었다는 것도 종이 위에 적힌 빈 문서일 뿐이다. 한 지아비의 마음도 뺏지 못한다고 했거늘, 하물며 2천만의 정신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겠느냐.
▶이토: 한국인은 3천, 4천년 이래 고유의 독립을 확보하고 있는 듯이 말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일본은 될 수 있는 대로 한국이 독립하기를 바라왔지만 한국은 끝내 독립할 능력이 없었다. 일·청, 일·러 전쟁을 했고 그결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일본의 자위상(自衛上) 어쩔수 없는 조치였다.
-사회: 내년이면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는데 이를 놓고도 양국에서 시각이 다른 것 같은데…
▶이토: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예전에 일본은 한국에 문명을 전도하려고 했다. 한국인은 자립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 그럭저럭 살아가려는 심리가 있었다. 한국의 군사 및 경찰제도, 교육, 행정, 공업, 재판제도는 한마디로 혼란과 무능 그 자체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으로 배꼽을 잡게 하는 유생(儒生)뿐이고 제대로 된 인물도 없었다. 나는 한국을 문명국으로 만들기 위해 진력했는데 식민지 시대에도 어느 정도 일관된 방향으로 진행된 것 같다. 오늘날 한국이 번영을 이룬 데는 일본 역할이 컸다.
▶안중근: 아직도 일본인은 도둑놈 심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외국에서 써오던 수법을 흉내내 약한 나라를 병탄했다. 이런 생각으로는 패권을 잡지 못하고 독부(獨夫·악행을 일삼아 따돌림을 받는 사람)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일본의 성질이 급해서 빨리 망하는 결함이 있는데 결국 태평양전쟁에 패하지 않았는가. 일본인들이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일본을 위해서도 애석한 일이다.
-사회: 두 분의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많은데 안 의사가 쓴 유명한 책 '동양평화론'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안중근: (힘찬 표정으로) 집필 당시와 현재와는 환경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유효한 제안이다. 당시 서양제국주의와 일본의 침략주의를 억제하는 틀로 한중일 삼국연대가 필요했고 여순을 중립화해 동양평화회의 본부를 그곳에 둘 것을 제안한 것이다. 분쟁의 축을 협력의 축으로 바꾸는 모델이다. 오늘날의 유럽연합(EU)과 같은 형태다. 동양평화를 위해 이를 가로막는 이토공을 사살한 것이다.
▶이토: 삼국연대는 원칙적으로 찬성이다. 이웃끼리 뭉쳐야 한다. 삼국 간에 좀더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나는 문관출신으로 한번도 전쟁을 찬성한 적이 없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일본의 이익을 어떻게 지켜갈지 고민했을 뿐이다. 나를 동양평화를 해치는 주범으로 모는 것은 억울하다.
-사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얘기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한일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토: 우리 둘의 관계를 한일 간에 가까워지는 징검다리로 이용하면 좋겠다. 쏘고 죽었다는 과거 역사가 중요한 게 아니다. 두 사람에 대한 양국 간 공동연구, 세미나, 민간교류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안중근: 서로 원한을 잊을 때가 됐다. 한국과 일본은 가장 우의있게 지낼 수 있는 나라다. 각자 나라에서 인정받는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동양평화를 위해 활용됐으면 한다. 합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망한다는 것은 만고의 이치다.
정리·박병선기자 lala@msnet.co.kr
*토론 상당 부분은 두 사람이 역사 기록과 자서전, 전기 등을 통해 밝혔던 내용을 주제에 맞춰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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