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국의 핵주권/이정훈 지음/글마당 펴냄

입력 2009-10-14 15:32:17

"원자력은 위험" 그 오해와 진실

"반핵을 외치는 사람을 진보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나는 진보라는 말에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에, 거부감 없이 반핵을 수용했다. 국내 원전에서 잘못한 것이 걸려들기만 하면 대서특필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갖고 있었다. 스스로 환경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란 생각이 강했기에 원전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지은이가 원자력을 취재하고 공부하기 한참 전에 가졌던 생각이다. 기자인 지은이는 데스크로부터 '반핵 운동의 허구성을 폭로하라'는 주문을 받고 난감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은이는 반핵 쪽에 기울어져 있었다. 내키지 않았기에 시늉만 내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취재를 할수록 원전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은 변했다.

1984년 국회 보사위원회에는 '울산 고리 원자력 발전소 배출구 주변의 해양 식물 생태와 바닷물의 온도 변화'라는 보고서가 제출됐다. 다음날 한 중앙 일간지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고리원자력 1, 2호기 발전소 주변 해역 방사능 오염 심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상당한 파문이 일었다.

당시 일반 청정 해수의 전베타 자연방사능은 340pci/ℓ 인데, 고리원전 주변 해수의 전베타 자연방사능은 481pci/ℓ 였다. 이는 원자력법이 정한 가장 낮은 핵종의 해수 방사능 기준치 500pci/ℓ 보다 낮았다. 프랑스 원전 주변 해역의 540pci/ℓ 보다도 낮았다. 일본 원전 주변 해역의 455pci/ℓ 보다는 조금 높았다.

고리 원전 1호기를 가동하기 전인 1970년 조사한 고리 원전 주변 바다의 방사능 농도는 521pci/ℓ 이었고, 1975년에는 446pci/ℓ 였다. 결과적으로 고리 인근 해역의 방사능 농도가 고리 원전 1호기를 가동한 후 현저히 높아졌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언론은 가장 깨끗한 청정바다와 고리 원전 주변을 비교해 오염됐다고 보도한 것이다. 고리 원전 주변의 방사능 준위를 비교하려면 다른 육지의 근해와 비교해야 했는데, 청정해역과 비교했던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용융사고로 '비교적 고선량'에 노출된 사람의 수는 60만 명이었다. 그린피스는 체르노빌 사고가 있은 후 비교적 고선량인 15 밀리시버트 이상을 맞은 60만 명 가운데 9만 명이 암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서를 내놓았다.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60만 명의 인구가 있으면 이 가운데 15만 명이 노쇠해지면서 암에 걸린다고 본다. 자연사하는 사람의 1/4이 암에 걸려 사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1/4이 암으로 죽는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암에 걸린 줄도 모르고 살다가, 다른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1/4이란 직접적인 사인이든 아니든 암에 걸리게 되는 일반적인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그린피스가 전망한 9만 명의 암 발생자는 15만 명 안에 포함될 수 있다. 큰 의미 없는 추산임에도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로 인한 사망자는 59명이다. 이 59명은 사고 후 19년이 지나는 동안 누적된 희생자의 전체 수치다. 따라서 이 사고로 수만 혹은 수십만 명이 희생됐다는 것은 심각한 과장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해명'은 '변명'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어 했다. 이것이 곧 반(反) 원전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과학이 아니라 '과학 비슷한 것'을 토대로 원전의 위험을 지적했고, 언론은 눈에 불을 켜고 원전의 위험을 보도했다. 겁에 질린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과학은 역부족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03년 방폐장을 유치하겠다는 소신을 가졌던 김종규 전 전북 부안군수는 뭇매를 맞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지역 발전을 위한 그의 소신은 당리당략에 따른 정치인의 선동과 언론의 호도,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경주가 방폐장 유치지로 결정됐을 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원전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원자로가 위험하다면 그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나처럼 원자로를 조종하는 사람이다. 원자로 조종사인 나와 내 동료들은 안전하다고 말하는데, 원자로 근처에도 와 보지 않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월성 원전 소장은 원전에서 나오는 온배수(溫排水)로 전복을 키우고 있었다. 소장은 거기서 잡아낸 전복을 지은이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본인과 직원들이 먼저 맛있게 먹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전복을 먹으면서 지은이는 '이걸 먹고 나와 내 가족들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 했다. 그러나 세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원자로에 대한 취재는 18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원자로와 관련된 취재가 있을 때마다 지은이는 취재를 맡았고, 그 결과물이 이 한권의 책이다.

사람들이 원전이 위험하다고 과장되게 믿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원전과 핵무기에 대한 자료는 원자력을 공부한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는 이 어려운 이야기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사람이 없다. 춘추시대를 살았던 손자의 병법을 나관중이 이야기로 풀어 '삼국지 연의'를 펴냈다면, 원자력도 알기 쉽게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 지은이가 이 책 '한국의 핵 주권'을 쓴 중요한 이유다.

책은 우리나라 원자력 분야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나아갈 길을 정리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나라에서 시작, 원전 발전량 세계 6위, 원전건설 능력 세계 3강, 원전 운영능력 세계 2강에 오르기까지 숨 가빴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세계의 대세는 '원자력 에너지'를 가능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세에 역행했다. 책은 그 역행을 새로운 대세로 만든 '원자력인'들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지은이는 녹색성장 시대를 열어가려면, 한국과 미국 간의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서라도 한국이 핵연료를 재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도 담고 있다.

"자원 빈국인 한국이 환경을 보존하면서도 고도 성장을 거듭하려면 원자력이라는 대형 에너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를 평화 목적에 맞게 재처리할 수 있어야 방폐물을 줄일 수 있다. 이 재처리는 핵무기를 제조하려는 것이 아니기에 재활용으로 불러야 한다. 재활용을 위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지금 우리가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프랑스다. 일본이 그 뒤를 쫓고 있다. 450쪽, 2만3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