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뉴웰 감독 연출
그래. 여자는 그저 좋은 남편 만나 아이 낳고 사는 것이 행복이야. 남편을 받들고, 아이들을 키우며 오래 참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 1950년대 미국도 그랬다. 자신의 이름보다 누구의 부인, 또는 누구의 엄마가 되는 것이 최대의 행복으로 여겼던 시절이다. 새 학기를 맞은 가을 웨슬리 대학 캠퍼스의 여대생들의 꿈도 결혼이다.
웨슬리 대학은 아내가 되기 위한 조신한 처신을 배우는 뉴잉글랜드의 명문 대학. 여기에 진보적 성향의 여강사 캐서린 왓슨(줄리아 로버츠)이 온다. 보수적인 학생들은 캐서린의 사고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모와는 달리 냉정하기 짝이 없는 베티(커스틴 던스트), 똑똑한 조안(줄리아 스타일스), 프리 섹스 물결에 빠진 지젤(매기 질렌홀)… . 성격은 다르지만, 모두 결혼만이 여자 인생의 최고 목표라고 믿고 있다. 캐서린은 이들을 바꿀 수 있을까.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마이클 뉴웰 감독이 연출한 '모나리자 스마일'(2003년)은 1년의 기간제 강사가 보수적인 대학에서 오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담은 여성주의 영화다. 2차대전 이후 달라진 여성의 위상에 맞게 가르치겠다는 여강사와 아직도 여성에게는 에티켓이나 가계일 만을 가르쳐야 한다는 대학 측, 그 사이에 놓여 있는 당사자이지만, 정작 자신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과의 갈등과 화해를 그리고 있다.
그림은 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창이다. 의식의 건너편을 깨워주는 각성제가 되기도 한다.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그림은 캐서린이 여학생들에게 제시하는 채찍이다. 일종의 죽비(불교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법구)인 셈이다. 옛것을 무조건 따르지 말라고, 이제는 자신을 찾으라고, 더 이상 희생의 제물이 되지 말라고 요구하는 주문서이다.
캐서린이 보여주는 그림 중 인상적인 것이 미국의 추상 화가 잭슨 폴락(1912~1956)의 '연보랏빛 안개'라는 작품이다. 거대한 캔버스에 물감을 무질서하고, 어지럽게 뿌려놓은 듯한 추상화다. 캐서린이 갤러리에서 이 그림을 보여주자, 정물화처럼 단정하게만 커 온 학생들은 도저히 무슨 그림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캐서린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림만 보라"고 말한다. 자신의 느낌, 자신의 시선을 세워주기 위한 것이다.
잭슨 폴락은 1950년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진보적인 화가다. 당연히 보수진영으로부터는 배척을 받았다. 폴락은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그 주변이나 위를 걸어다니면서 물감을 뿌려댔고, 그 결과 아주 독창적인 화면을 창출했다. 폴락의 그림은 그 움직임의 기록이다. 비평가 해롤드 로젠버그는 그의 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액션 페인팅'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캐서린은 폴락의 작품을 통해 제발 다른 세계를 보라고 권유한다.
'모나리자 스마일'에는 폴락 외에도 파블로 피카소, 빈센트 반 고흐 등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위대한 예술가로 평가받는 화가들을 등장시킨다.
'현대 미술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고 하는 고흐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고흐는 당대에 단 1점밖에 팔지 못한 불운한 화가였다. 그가 생존했을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캐서린은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여주며 진주 같은 그의 존재를 알려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학생들은 학기를 마치고 각자 서로 다른 느낌의 해바라기를 그려 캐서린에게 선물한다. 캐서린과 학생들의 화해를 불타는 듯한 색채와 격렬한 운율의 '해바라기'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초반 미술사 강사로 부임해 가는 캐서린이 기차 안에서 슬라이드 필름으로 꺼내 보는 그림이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스페인 내란을 주제로 전쟁의 비극성을 표현한 피카소의 대표작이다.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상처 입은 말, 버티고 서 있는 소, 흰색, 검정, 황토색으로 압축한 배색과 흑백의 대비로 잘 보여주고 있다. '게르니카'는 다가올 캐서린의 고난을 예고해주는 상징물이다.
'모나리자 스마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작품 모나리자의 미소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 알 듯 모를 듯한 여인의 미소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캐서린이 '모나리자'를 보여주자 학생들이 서로 다른 생각들을 드러낸다. 가장 보수적인 성향의 베티는 인형처럼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며 모나리자와 오버랩시킨다. "그림 속의 그녀처럼 행복해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보이는 그대로가 다는 아니에요. 그녀는 행복할까요?" 보이는 것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김중기 객원기자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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