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집 그 참새 맛…모두가 그리움인 것을
참새구이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눈 질끈 감고 통과하려면 목덜미를 누가 당기는 것 같다. 김유신 장군의 말이 천관녀네 집을 들르지 않고 못 배기듯 참새구이집을 못 본 척하고 지나기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니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포장집 비닐 문을 젖히고 들어가 소주 한 병에 참새구이 반 접시를 시킨다. "왜 한 접시를 시키지 않느냐"는 주인의 눈총을 날씨타령으로 따돌리는 데도 상당한 힘이 든다.
반 접시에 네 마리가 얹혀오면 주인 인심은 짠 편이고 다섯 마리면 후한 축이다. 소주 한잔 마시는데 참새 반 마리를 먹어야 술과 안주의 리듬이 가까스로 맞아 떨어진다. 네 살 때 돌아가신 선친은 막걸리와 파전의 박자를 맞추지 못해 만날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데 거기에 비하면 얼마나 현명한가. 이런 걸 청출어람이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잔인 일곱 번째 잔은 한 마리 통째로 즐길 수 있다. 이런 행복을 어찌 혼자 누린단 말인가.
##새총'소쿠리'전짓불 등 사냥도구 갖가지
어릴 적부터 무엇을 잡는 사냥질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탱자나무로 고무줄 새총을 만들어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어쩌다가 몸피가 큰 콩새라도 한 마리 잡는 날이면 혼자 아궁이 앞에 앉아 얼굴에 검댕이 칠갑을 해가며 구워 먹곤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포획 방법도 달라졌다. 마당에 싸리 소쿠리를 나무 꼬챙이에 받쳐두고 낟알을 듬뿍 뿌려둔 후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아들기를 기다렸다. 참새들이 곡식들을 주워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으면 꼬챙이에 묶여 있는 끈을 잡아챈다. 요행히 한두 마리라도 잡히면 다행인데 번번이 실패한 기억밖에 없다.
대학 일 학년 때. 대학생이 되었다는 기쁨에 겨워 밤낮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는 유희는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동네의 초가집 추녀 속의 참새들을 잡아 푸짐한 파티를 벌이자는 아름다운 음모가 꾸며졌다. 누구는 전지를 구해오고 또 누구는 참새를 쓸어 담을 아가리가 넓은 포대를 준비하고 다른 친구는 냄비를 들고 왔다.
이윽고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작전은 시작됐다. 힘센 친구의 목말을 탄 날샌돌이가 처마 밑에 전짓불을 비춰가며 두셋 집을 돌자 포대 속엔 잡힌 참새가 열 마리를 넘었다. "야, 이놈들아. 지붕에 불낼라 카나. 처마에 불을 갔다 대다이." "할아부지예. 불이 아니라 전짓불이라예." "그래도 불은 불 아이가. 당장 몬 치우나." 전짓불을 횃불로 착각한 노인의 꾸지람만 없었어도 그날 밤 우리 동네 참새는 씨가 마를 뻔했다.
참새의 털을 벗기는 친구는 좋아서 혼자 웃었고 담 밑 응달에 묻어둔 김장김치를 퍼오는 친구도, 두 되짜리 주전자를 들고 시장통 막걸리 집으로 뛰어가는 친구의 다리에도 흥이 실려 있었다. 누드 참새를 냄비 밑바닥에 깐 다음 물을 붓고 끓이다가 김장김치와 두부를 쑹덩쑹덩 썰어 넣고 간을 맞추고 나면 훌륭한 참새찌개가 되었다.
##막걸리에 참새찌개는 최고의 궁합
막걸리에 참새찌개, 궁합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없었다. 술이 떨어진 빈 주전자를 채우기 위해선 가위 바위 보로 정해진 술래가 막걸릿집으로 뛰어가야 했다. "돌아올 때까지 먹지 마. 내 없을 때 찌개 먹는 놈은 개새끼!"란 욕설이 귓바퀴를 채 돌아나가지 않았는데 냄비 속의 숟가락들은 칼싸움 중이다. 오! 아름다웠던 그리운 날들.
요즘도 참새구이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그해 겨울 그 참새찌개 맛을 잊지 못한다. '그집 앞'이나 '그 참새 맛'이나 모두가 그리움인 것을.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참나무 장작에 참새를 다비(茶毘)하면 불심 강한 것들은 사리를 쏟아 놓는다'는 선방 스님들의 우스개가 있다. 그러나 내가 술안주로 먹은 참새에게서는 사리 한 알 나오지 않았다. 아마 내 안에서 사리를 다시 만들 모양이다. 이건 참말이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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