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도 아닌듯, 입체도 아닌듯…
정은주(45)의 작품은 그림과 작가의 생각이 어떻게 진화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대학 시절 실내 풍경을 주로 그렸다. 하지만 어떤 '답답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것이 구상회화의 한계인지, 평면의 한계인지 아니면 작가로서의 한계인지는 알 수 없다. 1989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11년을 보낸 뒤 작가는 구상이 아닌 추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에 "재미있다"고 답했다. 답답함을 떨쳐버린 후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비록 힘든 작업이지만 즐겁다고 했다.
사실 작업 과정은 상당히 고단하다. 톱밥을 압축해 강도를 높인 MDF(중밀도섬유판)를 원하는 모양대로 잘라야 한다. 직육면체를 45도 각도로 어슷하게 썰어낸 모양이다. 그 위에 밑칠을 5~10차례 한 뒤 다시 부드러운 사포로 거친 표면을 다듬는다. 아크릴 물감을 섞어 원하는 색을 만든 뒤 에어 브러시로 색을 입힌다. 역시 수차례 덧칠을 거듭한 뒤 사포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다. 마지막에 코팅 처리까지 마쳐야 작품이 완성된다. 정은주는 "작업실이 온통 나무 먼지에다 물감 투성이여서 앉을 곳조차 없다"고 했다.
작업실이야 어떻든 그의 작업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평론가 강선학은 "정은주의 작업은 한마디로 평면이면서 평면이기를 거부하고, 입체이면서 입체이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정면과 측면에서 볼 때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작품을 보는 다른 시선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평론가 유근오는 "(현대 사회의) 과대 포장된 이미지들, 범람하는 기호들, 공공연한 포르노그라피와 폭식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헌정된 성찬의 쓰레기들로 가득 찬, 마치 사육제 같은 난장의 북적거림에 익숙해진 목격자에게 정은주 회화의 모더니즘적 순수성과 단순함이 다른 무엇을 의미할 수 있단 말인가. 목격자는 유구무언이거나 방관자가 되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조형 속에 모든 회화적 요소를 갖춘 정은주의 작품은 한기숙갤러리에서 10월 24일까지 만날 수 있다. 053)422-5560.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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