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성밖 숲' 천연기념물 죽어간다

입력 2009-09-21 10:02:07

300년 넘은 왕버들군락 콘크리트에 갇혀 사막화 진행

천연기념물 성주
천연기념물 성주 '성밖 숲'의 왕버들이 암수 비율 파괴와 사막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푸석푸석한 나무껍질이 쉽게 떨어진다. 나무 밑동을 두드리니 '퉁퉁' 빈 소리가 난다. 나무 허리춤에 노란색 버섯이 촘촘히 박혀 있다. 나무가 썩어간다는 증거다. 몇몇 잔가지만이 돋아나 어색한 푸름을 뽐내고 있다. 어른 두 세 명이 감싸 앉아야 닿을 정도인 굵은 몸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무에는 종이컵, 찌그러진 커피캔이 걸려 있다. 번식력이 강한 나무지만 대를 이을 후계목이 없다. 습지를 좋아하지만 땅은 메말랐고 단단히 굳어있다. 식생 환경이 다른 느티나무도 곳곳에 보인다.

천연기념물 403호 성주 '성(城)밖 숲'이 죽어가고 있다. 숲의 대를 이을 후계목이 없고 왕버들이 살 수 있는 생태적 환경과도 거리가 멀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 숲은 왕버들 나무로만 구성된 데다 마을 풍수지리와 토속 신앙에 따라 조성돼 학술적 가치가 크다. 경산지, 성산지는 '조선 중기 성밖 마을 아이들이 이유없이 죽고 흉사가 이어져 마을 중간에 숲을 만들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해 조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99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며 현재 수령 300∼500년 된 왕버들 59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난 17일 찾은 성밖 숲은 잔뜩 말라 있었다. 주민과 행락객이 나무 주위를 밟고 다녀 질경이를 빼곤 식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흙은 깎여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군락 주변은 온통 콘크리트로 뒤덮여 있었다.

동행한 계명대 생물학과 박사 과정 최병기씨는 "건강한 왕버들 군락은 암그루와 수그루 비가 1대 1이지만 성밖 숲은 75대 25로 깨졌다"고 했다. 또 "일반 왕버들 군락은 후계목이 즐비한데 반해 이곳은 후계목이 한 그루도 없다"며 "이대로 방치한다면 나무 수령이 끝나는 동시에 숲도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위기의 왕버들은 사람만 편한 사막화 공원을 조성한 데서 초래됐다. 왕버들은 자연범람 하천 퇴적지에 조성되는 게 보통이고 왕버들이 군락을 이룬다는 것은 하천이 생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일대는 온통 콘크리트 천국이다. 하천 역시 범람하지 못하도록 돌벽을 쌓아 놓았다. 여기에다 행락객이 왕버들 군락을 밟고 훼손해 서식지 환경이 크게 파괴됐다. 성주군이 어린 왕버들을 인공적으로 심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고 있다.

계명대 김종원 생물학과 교수는 "왕버들을 인위적으로 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왕버들이 지속적으로 씨를 내리고 후계목을 기를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며 "정확한 식생 조사를 통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굳어 가는 왕버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어릴 적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왕버들이 많았고 어린(후계목) 나무도 지천이었다"며 "굵고 건강하던 나무였는데 이제는 나무에서 썩은 가지가 떨어져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고 씁쓸해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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