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인물] 구한말 외교관 이한응

입력 2009-09-21 07:01:55

'오호라 국가는 주권이 없고 인종은 평등을 상실하여 각종 교섭에 치욕이 그지없으니 이 어찌 피끓는 자가 참을 수 있는 일인가. 오호라 장차 종묘 사직은 망하고 민족은 노예가 될 것이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치욕을 더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잊는 것이 옳을 것이다.'(『한국통사』/범우사)

한말의 외교관 이한응은 1905년 5월 12일 31세의 젊은 나이에 음독 자결하면서 이 같은 유서를 남겼다.

1874년 오늘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이한응은 한성부주사, 관립영어학교 교관에 이어 1901년 3등 참사관으로 영국 런던에 부임했다. 평범한 외교관이었다.

1904년 8월 제1차 한일협약이 체결되면서 민족의식에 불을 댕겼다. 각국에 주재하는 한국 공사들에게 연락해 주권수호에 힘쓸 것을 호소했다. 이듬해 일본의 한국에서의 지도, 감독, 보호를 인정하는 새로운 영일동맹을 맺으려는 양국 간 비밀외교가 진행되자, 영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본과 비밀리에 연락해 오히려 그를 축출하려고 했다. 그는 통탄하며 자결했다. 국권 박탈에 대한 최초의 자결이었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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